[아침뜨락] 김해숙 해성인문학네트워크

봄이다. 봄은 사람들에게 시작의 기운을 가져다준다. 나는 직업상 매년 이 시기쯤 학부모들을 많이 만난다. 새 학기는 학부모들에게도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게 하나 보다.

헌데 참 이상하다. 새로운 마음으로 자녀교육에 대해 생각한다는 게 고작 '어떤 학원을 끊고, 어떤 공부를 시킬까?'이기 일쑤이다.

새로움이란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한다는 거 아닌가? 그래야 존재가 변하는 거 아닐까? 사실 사람은 변하기 때문에 살 수 있는 존재다. 유치원 때 다르고, 초등학교 때 다르고, 대학 때 다 달라야 그 사람은 잘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에게 오직 하나의 바람은 공부 잘하기로 집약되고 있는 우리 어른들의 빈곤한 사유! 참 대략난감한 일이다.

이는 고착화된 우리들의 관점 탓이 꽤 크다. 아이들을 우리의 틀에 붙잡아두지만 않아도 대부분 해결될 텐데.

사실 인류의 발달과정과 한 인간의 성장과정은 많이 닮아있다. 우리 인류는 어느 한 때(대략 300만년전) 겨우 자기 발로 두 땅을 딛고 선 적이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과정으로 친다면 생후 12개월쯤이다. 탄생 직후부터 아기들은 일년 열두 달을 하루 같이 오로지 곧게 서서 한 발자국 걷는 데에 자신의 온 전력을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넘어지고 깨어지기를 수백번, 결국 아이는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단 한 걸음을 내딛었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번 곰곰 생각해보자. 아이가 한 발 내딛는 데에 어른들이 한 일은 무엇일까? 다만 때맞춰 밥주고 재우고 기저귀 갈아준 것밖에 사실 별로 한 일이 없다. 그 아이가 걷는 데에 한 교육이라고는 한 걸음 떨어져서 손 벌리고 박수쳐준 것뿐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시기의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도 자명해진다. 내 몸을 사용하고, 내 몸을 도구화해서 삶의 기예를 닦는 것, 이게 유소년기 아이들이 배워야 할 공부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인류의 직립보행은 엄청난 혁명임에 틀림없다.

아니 우리 인류는 두 발로 섰기 때문에 인간이다. 이는 두 발로 선 그 순간부터 자신의 힘으로 똑바로 살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원초적으로 우린 직립보행의 팔자를 타고 났고, 자립 역시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운명이다. 결국 자립은 생존의 문제이다. 인간은 자립을 해야 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부처님도 말씀하셨다. 무소의 뿔처럼 홀로 걸어가라고. 진정한 해탈도 거기 있다고. 그러고 보니 자유도 직립보행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유롭기 위해 직립보행을 선택한 것 아닐까? 헌데 지금 우리는 이 인류 초창기 시대의 유산을 제대로 잘 활용하고 있는 걸까? 우리 몸 뼛속까지 깊게 새겨져 있는 '자립'이란 생존법을 잘 써먹고 사는 걸까? 아닌 것 같다.

좀 솔직해져보자. 우리는 결혼도 좋은 배우자 만나 잘 살려는 교환과 계약 형태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자녀교육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사실 이건 자본주의 구조에서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회 현상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이 조금씩 변하는 조짐이 보인다. 그 반증이 바로 요즘 뜨는 '삼시세끼', '정글의 법칙' 같은 프로그램들이다. 직접 몸을 쓰는 '자립'을 컨셉으로 한 작품들에 왜 우린 그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그건 우리가 원초적으로 한 걸음 한걸음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립적 존재이기 때문 아닐까?

그렇다면 자녀교육의 해답도 명료해진다. 하루하루를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삶의 조건속에 냅둬 주는 것! 이게 진정한 'Let it g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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