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박현수 숲해설가

봄날이 다가오니 맘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떠오르는 맘을 잡고자 잎도 틔지 않는 숲길을 걷습니다.

숲을 산책하면서 맘의 혼란함은 더 커져갑니다. '나무는 왜 이런 모습일까?' '풀들의 꽃은 왜 이런 모양을 하고 있을까?' 하는 형태적 궁금증부터 '저 곤충은 왜 저 꽃에만 갈까?' '새들은 무엇을 먹고 살까?' 하는 생태적 궁금증까지 숲 바닥에 낙엽이 쌓인 것처럼 머리에 가득 쌓여갑니다.

요즘은 '저 나무는 옛날에 어떻게 불렸을까?' '맨드라미는 과거에도 있었을까?' 하는 과거에 대한 궁금증까지 더해가니 숲에서 맘을 비우기는 힘들어집니다. 보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사랑해진다는 말처럼 사랑하는 것에 대한 궁금함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과거의 생명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 의학, 경제 등의 전문서적이 대표적인 자료입니다. 그 외에도 시, 가사, 수필, 소설, 야사 등의 문학적 자료들이 있겠지요. 중요한 건 두 자료 모두 텍스트로 남겨져있어 생생하게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옛 그림은 지금 바라보듯 과거의 모습을 살아 있 듯 만날 수 있습니다.

한국화에 대한 분류는 간단하게 대상과 기법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대상의 분류는 대표적으로 자연을 그린 산수화, 사람을 그린 인물화, 사람이 사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 꽃과 새를 그린 화조화, 풀과 곤충을 그린 초충도, 동물과 새를 그린 영모화 등으로 나누어집니다. 기법으론 먹과 물만을 사용한 수묵화, 옅은 채색이 들어간 수묵담채화, 채색으로 그린 채색화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적다 보니 학교 미술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옛 그림에서는 뜻을 담은 그림들이 대부분 그려졌습니다. 성인들의 삶을 그린 그림, 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 자연물의 상징적 의미를 담아 그린 그림 등 다양한 뜻을 갖고 있습니다. 자연물의 상징적 의미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석류는 다산·다복, 모란은 풍요·부귀, 소나무는 절개·지조, 대나무는 지조·청렴, 국화는 다산·절개, 패랭이꽃은 장수, 닭과 맨드라미는 관직, 연꽃과 연밥은 풍요·다산·과거합격, 까치와 참새는 기쁨·부부해로·장수, 매는 삼재를 막는 박사의 의미, 학과 갈대는 노후의 안락, 잉어와 게는 과거합격, 원앙과 기러기는 부부해로, 매화는 충절·절개·환생, 고양이와 나비는 장수 등 이외에도 다양한 생명들에게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봄바람 부는 날 나가면 춘정만 오르기에 앉아서 꽃을 만나보려 합니다.

첫 그림은 여름 햇살이 강하게 내려 비취는 한낮의 연못입니다. 연잎은 그 열기에 동글게 말았고 다른 잎은 끝자락이 누렇게 말라갑니다. 바람이 연분홍 꽃잎을 흔들고 그 향에 취한 잠자리들이 춤을 춥니다. 생생한 생태 사진을 보는 듯 한 이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연꽃과 잠자리입니다. 연잎의 잎맥의 세세한 표현과 연못에 짝짓기를 하는 잠자리의 모습, 연꽃이 지고 맺혀진 연과의 모습까지 지금의 연못의 풍경과 똑같아 보입니다.

다음 그림에는 각 각의 꽃이 있습니다. 첫 번째 그림은 원추리 꽃이 호랑나비를 유혹하고. 두 번째 그림은 바위틈에 얼굴을 내민 금낭화에 나비가 날아듭니다. 두 그림은 1700년 초의 심사정의 그림입니다. 세 번째 그림은 맨드라미와 국화꽃 밑으로 쇠똥구리가 소똥을 말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1500년도의 신사임당의 그림입니다. 그림을 보면서 원추리, 금낭화, 맨드라미가 그 시절에 흔하게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 햇살에 방문을 열어 화단을 바라보며 행복한 표정으로 이 꽃들을 바라보았겠지요. 한국화는 대체적으로 양반가의 화단에서 기르던 꽃들만이 남겨져 있어 참 아쉽게 느껴집니다.

화단을 지나 담장을 넘어 어떤 꽃들이 가득했을까요? 궁금함은 담장을 넘기를 재촉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시선은 화단에 머뭅니다.

옛 사람들도 자연을 항상 함께 해왔습니다. 삶의 큰 부분이었던 자연은 언제부터 이렇게 멀어졌을까요? 자연이 등을 돌리고 돌아선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자연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창을 열면 두 팔을 가득 펼치고 안아줄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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