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지붕이 낮은 기와집이 많습니다. 기와집 사이로는 좁은 골목길이 있고요. 이런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하고 한없이 편안해지곤 합니다. 담장 위로 목을 쭉 뺀 노란 해바라기도 종종 볼 수 있고, 감나무나 대추나무에 알알이 맺힌 열매를 볼 수 있지요. 올해는 대추가 어찌나 매끈하고 굵던지 저절로 침이 꼴깍, 하고 넘어갔습니다. 노을빛을 받은 감은 얼마나 탐스러운지 모릅니다.

뿐만 아닙니다. 좁다란 골목길을 올라가면 조금 열린 대문 사이로 작은 마당에 상추나 파는 꽃보다 예쁠 정도지요. 또 어떤 할머니는 화분이나 작은 과일 상자에 상추나 고추를 키우기도 합니다. 한번은 유모차에 종이박스나 신문지 등을 가득 싣고 가는 할머니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얼른 달려가 도와드렸지요. 그랬더니 마당에 키운 채소를 한 봉지 가득 담아주셨습니다. 정말 '정'이라는 것을 덤으로 얻은 날,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날 볼이 미어져라 상추쌈에 밥을 싸 먹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사실 골목길은 비가 오면 좀 칙칙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밤이면 가끔은 좀 무섭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끔은 밤 골목길을 아주 천천히 걷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늘에 맑은 달도 한참 눈 맞춤 하게 되고요.

그것은 바로 우리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만나는 색다른 '사과나무 이야기길' 때문이지요. 글을 쓰다 보니 어쩌다 그 골목길에 재능기부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과나무 이야기길' 골목골목 벽에 제 동시와 동화가 들어간 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책으로 말고 밖에서 동화책을 볼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꼭 손으로 넘기는 동화책이 아닌 발로 콕콕 찍어가며 읽는 동화책은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덟 개 벽면에 동화를 넣기로 했지요.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뽀옹~ 사과 방귀'란 벽화 동화입니다. 한 거인이 사과를 먹고 방귀를 뀌면 달콤한 냄새가 난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개미나 고양이 토끼들이 그 달콤한 방귀를 맡으며 어디서 나는 걸까? 찾아 떠나는 이야기지요.

실제로 어린아이들은 이 벽화에 코를 대고 달콤한 사과 방귀를 맡아보곤 합니다. 그러면서 사과를 먹고 방귀를 뀌면 정말로 달콤한 냄새가 나느냐고 물어보지요. 가끔 인터넷 검색을 하다보면 '사과나무 이야기길'을 다녀 간 후 올린 사진과 글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벽화 동화를 올린 것을 만나는데…. 그 벽화 앞에 엉덩이를 쭉 빼고 방귀 뀌는 흉내를 내며 찍거나 사과모양의 방귀에 코를 대고 냄새 맡는 모습을 봅니다. 잠시나마 골목길을 다니며 사과향기와 어릴 적 추억에 푹 젖을 수 있었다는 글을 봅니다. 어릴 적 담장에 '00는 00를 좋아한대요'와 '낙서 금지' 등 삐뚤빼뚤한 낙서 등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요즘은 우리 동네 골목길을 걷다 보면 김장하는 모습과 연탄 들여 놓는 모습을 봅니다. 어릴 적에도 김장과 연탄을 쌓아 놓고야 안심하던 어머니가 생각나네요.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고 걸어보는 우리 동네 골목길 '사과나무 이야기길'. 꽃길과 글길, 그리고 재즈길과 작가길, 동화길, 계절길…. 사계절 내내 벽화에서 사과향이 물씬 풍기는 이 골목길이 저는 참 좋습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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