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사진 / AFP 연합뉴스

올해 미국의 온라인 영어사전 사이트인 딕셔너리닷컴(Dictionary.com)을 이용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은 단어는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Xenophobia)다. '외국인 또는 낯선 사람,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것'을 의미한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와 유럽난민사태로 주로 회자됐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도널트 드럼프의 정치적인 수사(修辭)를 "제노포비아의 표본"이라고 비판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 때문에 딕셔너리닷컴은 '제노포비아'를 올해의 단어로 꼽았다.

하지만 영국의 옥스포드 영어사전은 올해를 상징하는 단어로 포스트트루스(post-truth)를 선정했다. 전문가들은 '탈(脫) 진실'로 번역하고 있다. 진실을 벗어난, 또는 진실을 전혀 따지거나 중요시하지 않는, 심지어 무시해 버리는 흐름이나 추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수없이 거짓말을 쏟아내고 언론이 그 발언의 진위를 파악해 지적했지만 투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 단어다. 미디어와 SNS를 통해 유포된 거짓이 어느 순간 사실로 둔갑하는 것은 유명인사들이 대중의 호기심과 적대감을 교묘히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팩트를 떠나 듣고 싶은 말만 믿는 대중의 왜곡된 심리를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때 전문가들이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미국산소고기를 수입해 먹으면 금방 인간 광우병에 걸릴 것 같은 광기(狂氣)가 한때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포스트투르즈는 미국 대선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뿐만 아니라 사회가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도 그대로 투영돼 있다. 사실과 거짓이 혼재해 사람들은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모른다. 최순실 패거리들의 국정농단이 상상을 초월하고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워낙 각 분야에 다양하게 마수(魔手)를 뻗히다 보니 전혀 엉뚱하고 황당한 루머들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대중적인 영향력을 앞세워 사실여부와 관계없는 말들을 의도적으로 확산시키는 인물들도 있다. 주진우 시사인 기자는 유학생과 재일교포가 참석한 가운데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최순실게이트와 관련해 "섹스테이프가 나올 것"이라고 발언해 진보진영 조차 '근거없는 성적 괴담'이라고 비판했다. 정치인도 예외는 아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이 계엄령을 준비한다는 정보가 있다"고 말해 박사모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미용을 위해 국민혈세 2천억원 이상을 썼다"는 말도 했다가 확인도 없이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는 논란이 커지자 2천만원으로 정정하기도 했다. 아무리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근거 없는 일로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다. 요즘 같은 혼란과 혼돈(混沌)의 시기에는 정치인이나 유명인사의 '탈 진실' 발언이 난무한다. 대중에게 잘 먹혀들기 때문이다. 진실이 밝혀질 때 쯤 이면 대중은 다 잊는다. 최악의 국정마비 현상에 이런 선동가들이 득세하는 세상은 더욱 불안하다. 국내외적으로 우울한 기조가 심화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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