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서민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모든 경제지표가 '빨간색' 일색인 상황에서 서민들의 소비심리도 차갑게 식었다. 연말연시를 맞아 사람들이 몰려야할 전통시장과 도심 번화가는 활기를 잃었다. 대통령 탄핵 후 국정리더십 부재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상 등으로 경제를 둘러싼 불안감이 커지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심리와 체감경기가 금융위기 후 7년여 만에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됐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아담스미스의 말은 퇴색하고 이제 '절약이 미덕'이 됐다. 불안한 서민들은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이로인해 내수악화로 이어지면서 장기불황의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12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는 이 같은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4.2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94.2)과 같은 수준이다. 소비자들이 현재 경제상황을 얼마나 비관적으로 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경기(景氣)와 생활형편이 나빠졌다고 판단한 소비자들이 앞으로 소비지출을 줄일 것으로 보여 내년 상반기까지 '소비절벽'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더구나 가계부채가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금융당국의 대출심사가 강화됐고 부동산 공급과잉 우려 등으로 인해 부동산 경기에 침체돼 소비심리가 더욱 싸늘해졌다. 이 때문에 자영업자들은 매출하락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여기에 가격경쟁력을 갖춘 온라인 쇼핑시장이 성장하면서 자영업자들은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 그나마 대기업 유통매장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낫지만 영세상인들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일부 지역의 경우 매출에 타격을 받고 있는 상인들은 '일상적인 경제활동이 경제 성장의 주요한 동력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소비 진작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소비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것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의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부도가 속출하면서 고용사정이 악화되고 자산가격의 하락으로 빚에 시달려왔던 국민들은 차가운 체감경기에 본능적인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불황이 단기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20년간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을 뒤따를 것이라는 말도 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장기불황시대를 어떻게 극복하고 적응할 것인가가 심각한 과제가 되고 있다.

저성장과 불황은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안 좋게 만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빚을 내고 이게 쌓여 부채는 증가하고 이는 구매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가계부채가 1천300조에 달하는 상황에서 소비를 부추기기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소비가 위축된다면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서민 생활과 관련된 물가 안정에 힘쓰고 과감한 경기부양 정책,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민간소비를 진작시키는 노력을 강화해 나가지 않는다면 소비심리 위축과 체감경기 한파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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