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최용현 변호사

자료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탄핵, 대선과 더불어 개헌론이 정가의 주요이슈다. 개헌 논쟁은 대통령 임기와 막강한 대통령 권한의 해체(의원내각제 혹은 이원정부제로의 개편) 혹은 축소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대통령 권한의 해체·축소를 주장하는 이유는, 전임 대통령이 부정부패로 시민들의 조롱과 야유 속에 퇴장하는 우리 정치 특유의 '최악의 대통령'의 반복이, 제왕이라고 할 만큼 우리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고, 이를 견제·통제할 제도나 기구가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리 대통령이 비상식적일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졌는가? 그 원류인 미국의 대통령과 비교해보아 월등히 막강한 권한을 가졌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우리 헌법에 대통령의 권력행사를 견제·통제할 법적 수단이나 제도적 기구가 없는가? 이미 우리는 그러한 기제를 충분히 갖고 있다. 대통령을 없앤다고 하여 막강한 권력형성 시스템 자체가 없어질까? 그 빈자리를 또 다른 제도적 이름이 차지할 뿐이지 않을까? 오히려 비공식적이고 불투명한, 그래서 더 견제와 통제를 받지 않는 권력이 그 자리를 이어받을 수도 있다. 막강한 권력에서 나타나는 나쁜 결과를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권력을 해체하고 축소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더욱이 현대 사회에서 권력이 점점 커지고 집중되는 것은 피할 수 없고 오히려 더욱 요구되고 있다. 그렇기에 더 좋은 방법은 그 권력의 해체나 축소가 아니라, 그 권력을 견제·통제할 수 있는 그 만큼의 막강한 상대권력을 세우고, 이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최순실 사태의 근본 문제도 법적·제도적 문제라기 보다는, 막강한 상대권력들이 그 주어진 능력과 임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구조적·기능적인 것에 있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국정농단에 대하여, 이를 제어하여야할 의무를 가진 참모와 공직자들은 왜 침묵하며 받아쓰기만을 했을까? 청와대 밖의 의회·경제·언론·지방·교육권력들은, 사태가 지금처럼 곪아터질 때까지 왜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았을까?

그것은 대통령을 견제하고 통제할 이들의 권력도 그 내부적으로 '小제왕' 체제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고공직자·의회파벌·재벌·언론사주·지방 토호 등도 그 각자의 영역에서는 우리 대통령처럼 그 내부에서 견제와 통제를 받지 않기에, 그 본래의 기능과 임무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그 소제왕들은 그러한 기능과 임무를 수행하기 보다는, 오히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범행을 못 본 체하고 그 범행의 충실한 수명자가 되고 그 범행에 동참하여, 과실을 취득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것이다.

대통령을 견제하고 통제할 이러한 상대권력들이 자신들의 기능과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게 하려면, 그 소제왕 체제를 해체하거나 견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내부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법적·제도적으로 강제하여야 한다. 미시적·내부적 견제 시스템을 갖추어야, 그 각 조직과 부문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이고, 그로 인하여 거시적·외부적 견제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할 것이다. 공직의 독립적·민주적 인사시스템 구축, 사법·검찰 책임자의 직선제, 노조의 기업경영 참여, 기자들의 투표로 보도·편집국장 선출, 총장·학교장 직선제 등이 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용현 변호사

이러한 개혁의 선행없이 단지 지금처럼 대통령의 권한을 해체·축소만을 도모한다면, 그 해체되고 삭감된 권력을 나눠가질 집단은, 지금의 대통령만큼 무능하고 부패한 그러면서도 민주성과 책임성을 전혀 갖지 않은 관료·파벌정치인·재벌·언론재벌·지방토호들일 것이다. 사자가 사라지면, 변화의 희망마저 사라진 배부른 돼지들의 세상이 지속될 것이다. 오히려 이들을 통제하여 사회 전반에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제할 막강한 민주적 리더십이 아직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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