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수필] 최시선

사람이란 어떤 존재일까. 새삼 사람인 내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도대체 사람이 뭐냐고. 참으로 딱 이거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그만큼 복잡한 존재다. 물론 철학자들은 한마디씩 일갈해 놓았다. 이성적 존재라느니, 사회적 동물이라느니, 생각하는 갈대라느니 한 것이 그것이다. 말이 한마디지 이 말이 나오기까지는 의식 속에 천둥 번개가 치고 엄청난 회오리가 일었을 것이다.

그만큼 사람은 오묘한 존재다. 동물처럼 먹고 마시고 번식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하나는 서서 걷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직립보행과 사유, 이것은 사람을 동물과 확연히 다른 존재로 만들어 놓았다. 위로는 하늘을 이고, 아래로는 땅을 딛고 있다. 여기서 천지인 사상이 싹 텄을 것이다.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의 존재다. 사람은 하늘과 땅을 닮은 지고한 존재인 것이다.

고대 신화를 보면 사람의 탄생이 거의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 민족도 결국에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단군신화를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과 땅 위의 곰이 결합하여 사람이 탄생한다. 붓다나 예수 같은 성인의 탄생 설화도 마찬가지다. 붓다는 도솔천에서 내려왔고, 예수는 하늘에서 보낸 독생자다. 이 분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설파했다. 사람이 그 만큼 위대한 존재라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사람이 과연 위대한 존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지만 참 나쁜 사람도 있다. '나쁜 사람'이란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다. 때로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사람이 사람인 이유가 무언가. 굳이 성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잘못을 했을 때는 반성할 줄 알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볼 때는 측은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별 거 아니다. 거창한 사랑이니 자비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사람이라면, 상식적인 생각을 하며 가슴에는 따뜻한 온기가 있으면 족하다. 그게 사람이 아닌가.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 좋은 기운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눈에는 정기, 얼굴에는 화기, 몸에는 품기, 마음에는 의기, 생활에는 윤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오기(五氣)다.

다 중요하지만, 난 특히 화기(和氣)와 의기(義氣)를 강조하고 싶다.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에게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면 그냥 다가가고 싶다. 그 사람은 더운 여름 그늘을 드리우는 한 그루 나무일 수도 있고, 무성한 수풀 속에 피어난 한 송이 꽃일 수도 있다. 마음에는 늘 의로운 기운을 품고 있는 사람, 난 이런 사람을 보면 힘이 느껴진다. 잘못을 미워하고 부끄러워하며 때로는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다. 가끔 뉴스에서 교통사고로 위기에 처한 사람을 그냥 뛰어들어 구해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감동한다. 그 사람은 참으로 마음에 의기가 충만한 사람이다.

논어를 공부하면서 사람다운 사람의 기준을 발견했다. 어쩌면 공자가 말하는 이상적인 사람의 기준이다. 나는 이 문구를 발견하는 순간 희열이 차올랐다. 아니, 까마득히 오래된 책에 이런 글이 쓰여 있다니! 아, 그렇구나. 그 혼란한 시대에 얼마나 고민이 깊었으면 이런 사람을 그렸을까. 공자의 제자인 자하가 '군자유삼변(君子有三變)'을 말한다. 이 말은 논어 자장편 제9장에 나오는데, 학자들에 의하면 자하가 스승인 공자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대로 풀이하자면, '군자는 세 가지 변함이 있다'는 뜻이다. 군자란 공자가 말하는 이상적인 사람이다. 군자의 세 가지 변함이란 무엇일까. 제1변은 망지엄연(望之儼然)이고, 제2변은 즉지야온(卽之也溫)며, 제3변은 청기언야려(聽其言也?)이다. 군자란 모름지기 이 세 가지 모습을 동시에 갖추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망지엄연'이란, 멀리서 바라보면 의젓하다는 뜻이다. 늘 삼가고 공손하며 위엄이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난 이를 한마디로 '멋지다'라고 해석하고 싶다. 사람다운 사람의 제일의 모습은 멋진 사람이다.

'즉지야온'은 가까이 다가가 보면 온화하다는 뜻이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의젓해 보였는데, 가까이 가보니 사람이 참 따뜻하더란 말이다. 그렇다. 멀리서 바라보니 사람이 의젓하고 위엄이 있어 보였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따뜻함이 느껴지더라? 이 쯤 되면 그 사람에게 빠지지 않을 자 누가 있겠는가.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니 바로 '청기언야려'이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논리가 정연하더란 것이다. 발음과 표현이 분명하여 귀에 쏙쏙 들어오고, 앞뒤가 명확하여 몇 마디만 들어도 그냥 알아들을 수 있다. 이 사람은 실력까지 갖춘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 듣는 사람에게 이치에 맞게 잘 설명하는 사람이다. 바로 공자가 그랬다는 것이다.

군자유삼변, 멋지고 따뜻하며 실력까지 갖춘 사람! 어찌 보면 요즘 유행하는 창의 융합형 인재이다. 미래형 인재란 이런 사람이 아닐까. 이는 내가 그리는 사람의 모습이다. 사람은 어떤 존재일까 하고 헷갈릴 때, 난 이 군자유삼변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점검한다.

<프로필>

▶월간 문예사조 수필 등단
▶CJB 청주방송 제5회 TV백일장 수필 장원
▶한국문인협회, 청주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저서 '청소년을 위한 명상 이야기', '학교로 간 붓다', '소똥 줍는 아이들'
▶청주 서현중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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