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2010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인사이드잡'은 2008년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 파산과 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AIG의 붕괴를 소재로 금융엘리트들의 탐욕과 금권유착을 다루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사태로 불리는 금융위기는 주가폭락과 실업자 양산등 전세계적인 불황으로 이어졌으며 우리 경제도 모진 시련을 겪었다. 부시행정부는 700조원에 이르는 구제 금융안에 서명하고 메릴린치와 시티그룹에도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당시 회사를 깊은 수렁 속에 몰아넣은 메릴린치 CEO 스탠오닐은 그 와중에도 1500억원의 퇴직금을 받아 챙겼다. 모럴해저드의 극치였다.

한국 경제발전의 산증인으로 재계와 정부의 가교 역할을 했던 전경련이 최순실사태를 통해 부패와 정경유착이 드러나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다. 삼성을 비롯해 현대와 SK, LG 4대 재벌의 탈퇴로 연간회비의 70%(378억원)이상이 줄어들면서 존립기반도 흔들리고 있다. 전경련을 해체위기까지 몰아넣은 핵심인물인 이승철 상근부회장도 지난 24일 정기총회를 끝으로 물러났다. 주목을 받는 것은 그의 퇴직금이다. 무려 2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평범한 직장인에겐 꿈속에서나 만질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18년간 임원으로 활동한 그의 퇴직금 액수가 대기업보다 아주 과한 수준은 아니다. 지난해 국내 상장사 등기임원 가운데 퇴직금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고(故) 이인원 전 롯데그룹 부회장이었다. 30년간 그룹 임원을 지낸 이 전 부회장은 퇴직금 60억9800만원을 받았다. 지난 2014년엔 박종원 전 코리안리 사장이 15년 재직 퇴직금으로 159억5678만2000원을 챙겼다. 이는 코리안리 직원 평균 연봉(6500만원)의 245배를 넘는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퇴직금에 불합리한 관행이 있는지 조사하기도 했다.

CEO의 고액퇴직금에 대해선 시각이 엇갈린다. 유능한 리더십으로 회사를 성장시켰으면 충분한 예우를 해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도 있다. 반면 일반 직원에 비해 과도한 퇴직금을 지급하면 소득 불평등을 낳고 직원과 주주의 불만을 키워 회사 성과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많다. 3년전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각된 핀란드 휴대전화 제조업체 노키아의 CEO 스티븐 엘롭이 273억원의 퇴직금을 받는다는 보도에 지르키 카나이넨 핀란드 총리는 "지금 같은 불황에 엘롭의 퇴직금은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비난했다.

만약 이승철 전부회장이 20억 원을 받는다면 아무리 내부규정에 따랐다 해도 일반인들은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그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대기업 출연금 모금을 주도해 정경유착으로 국정혼란을 빚은 인물이다. 더구나 회원사의 회비로 운영되는 사단법인 임원이 조직을 엉망으로 만들고 고액의 퇴직금을 받는 것은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그는 3년 전 모일간지에 게재한 '선진국 착각 늪에 빠진 대한민국'이라는 칼럼에서 '법치주의 순위가 높을수록 선진국'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법치를 무시하고 오로지 재벌과 자신의 이익만 추구했다. 위선의 극치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