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화사한 꽃분홍으로 봄 인사를 건네는 꽃잔디와 눈을 맞추고 있을 때 핸드폰 화면에 중학교 동창의 전화번호가 뜬다. 순간 반가운 마음과 함께 '아들이 장가를 가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예감대로 큰 아들의 청첩을 알리는 들뜬 그녀의 목소리가 한참의 수다를 몰고 왔다가 수화기 너머로 사라졌다. 며칠 전에도 집안의 큰일 때나 만나는 이종사촌 오빠가 주소를 물어오면서 던져놓은 청첩장이 예약된 상태이다. 겨울을 걸어온 봄이 꽃으로 피는 계절. 그러고 보니 봄은 꽃소식과 함께 청첩장으로 먼저 날아들었다.

결혼 소식이 들릴 때마다 잊지 않고 생각나는 일이 있다. 아래로 일곱 살 차이인 남동생이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올케 될 사람과 방문했다. 잔치를 앞두고 긴장과 함께 부담감이 작용했었는지 보약 한 첩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근처에 용한 한약방이 있으니 시간 나면 한번 들르라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내 한복판이지만 허름한 건물에 오래된 간판이 붙어있는 미닫이문을 열고 한약방에 들어섰다. 햇볕이 들지 않는 약방에는 한복 차림의 약사분이 약재를 다듬고 계셨다.

가게 한편에 딸린 온돌방으로 안내를 받고 좌정을 하니 은은히 풍기는 한약재 냄새로 마음이 차분해졌다. 한쪽 팔을 맥 짚는데 내어준 동생이 몸 상태를 설명하고 약사는 그 모습을 그윽이 바라보신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동생에게 옆에 처자는 누구냐고 물으셨다.

약사의 질문에 결혼할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남동생을 바라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누나로서 마음이 짠해왔다. 여든을 바라보고 계신다는 약사 어른은 결혼을 축하한다는 말씀과 함께 덕담을 해주셨다. "신혼은 꿀맛이라고 하지요. 당장은 꿀이 좋겠지만 꿀보다는 물처럼 사시게나. 꿀은 달지만 오래 먹을 수도 없고 질리기도 하지, 그러나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거니와 물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흔히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는 것도 물은 꿰맨 자국 없이 한데 합쳐지기 때문이라오" 마음을 다해 예비부부에게 좋은 말씀을 해 주시던 약사 어른이 무척 고마운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보약 같은 덕담을 들어서인지 동생 내외는 세 명의 예쁜 조카들과 함께 알콩달콩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최근 결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전반적인 경기 침체와 사회 불안으로 인해 청년층의 취업과 고용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당연히 해야 할 결혼이 지금은 선택이라는 시선들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결혼의 문 앞에서 젊은이들은 서성이고 부모들은 걱정을 한다.

김순덕 수필가

결혼을 잘하면 그 어떤 성공보다 더 큰 행복이 따라오고 결혼을 잘못하면 그 어떤 실패보다 곤경에 처하게 되기도 하지만,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산다면 온전한 내편이 생기는 것이다. 결혼한 부부들이 넉넉하거나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서 함께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하트마 간디는'겁쟁이는 사랑을 드러낼 능력이 없다. 사랑은 용기 있는 자의 특권이다'라고 했다. 비록 사회나 환경이 우리에게 녹록지 않지만 결혼 생활을 어디서 어떻게 하느냐 보다는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당당하게 결혼에 대해 결심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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