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로의 비너스

필자는 지난 연재에서 세계 3대 박물관을 '약탈 박물관'으로 보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약탈'은 단지 해당 국가의 다른 지역에 있었던 유물을 약탈했다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유물을 약탈했다는 것도 포함된다. 따라서 '약탈'은 유물의 장소성 박탈을 뜻한다. 그리고 유물의 장소성 박탈은 (벤야민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유물의 아우라 파괴를 의미한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는 예술작품의 진품성을 요약할 수 있는 아우라는 기술적 복제 이전에 일명 '약탈' 박물관의 등장으로 인해 위축된 것임을 알려준다. 따라서 예술작품을 원래 있던 장소에서 떼내어 박물관으로 자리바꿈시키는 것은 예술작품을 전통의 영역에서 떼어내는 일, 즉 예술작품의 아우라를 파괴하는 일이 되는 셈이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예술작품이 있었던 장소에서 '그 예술작품이 존재하는 동안 처했던 역사가 이루어져 왔던' 예술작품을 박물관으로 옮겨놓음으로써 원작의 진품성은 위축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예술작품의 물질적 지속성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예술작품의 역사적인 증언가치는 예술작품이 원래 있던 장소를 떠나게 되면 그 예술작품의 역사적 증언가치 또한 흔들리게 된다. 그렇다면 복제기술 이전에 탄생한 박물관이 (벤야민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예술작품의 권위, 예술작품의 전통적 무게(의미)'를 흔들리게 했던 것이 아닌가?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유일성을 전통의 연관에 편입되어 있는 것과 같은 현상으로 본다. 하지만 그는 전통이라는 것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변화무쌍하다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고대의 비너스 상은 그것을 제의(祭儀·Kult)의 대상으로 삼았던 그리스인들에게는 그 상에는 불길한 우상을 보았던 중세의 성직자들에서와는 다른 전통 연관 속에 있었다. 그러나 그 두 집단이 똑같이 맞닥뜨린 것은 그 상의 유일성, 즉 그것의 아우라였다. 예술작품이 전통의 맥락에 편입되는 원초적 방식은 제의에서 표현되었다."

고대의 비너스 상은 그리스인들에게 제의의 대상이었던 반면, 그것은 중세의 성직자들에게 불길한 우상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제의의 대상이나 불길한 우상은 한결같이 비너스 상의 유일성, 즉 그것은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인들과 중세의 성직자들이 비너스 상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했지만, 결국 그들은 비너스 상을 똑같이 제의의 대상으로 보았다고 말이다.

벤야민 왈, "우리가 알다시피 가장 오래된 예술작품들은 의식(儀式·Ritual)에 쓰이기 위해 생겨났는데, 처음에는 주술적 의식에 쓰이다가 나중에 종교적 의식에 쓰였다. 그런데 예술작품의 아우라적 존재방식은 결코 그것의 의식적 기능에서 떨어져 나온 적이 없다는 사실이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 달리 말해, '진정한'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가치는 의식에 근거를 둔다."

하지만 의식에 근거를 둔 '진정한'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가치는 복제기술로 인해 예술작품을 전시가치로 전이된다고 벤야민은 본다.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은 역사상 처음으로 예술작품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의식에 기대어 살아온 기생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도록 하였다."

그런데 외람되지만 '역사상 처음으로 예술작품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의식에 기대어 살아온 기생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도록' 한 것은 복제기술보다 대략 1세기 이전에 탄생한 박물관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박물관은 예술작품을 은밀한 곳에 숨겨두기를 요구한 제의가치를 전시가치로 전이시키기 때문이다.

/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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