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농협 안성교육원 교수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봄의 묘미는 꽃이다. 봄은 꽃으로 물들고 진다. 봄꽃에 눈이 황홀하고 마음이 들뜬다. 봄꽃에 얽힌 추억을 쌓으며 나이 든다. 며칠 전 편찮으신 장모님께 드릴 꽃을 사기 위해 아내와 화원에 들렀다. 중년의 남자가 자기 아내에게 선물한다며 한 송이마다 오만원지폐로 감싼 장미꽃 스무 송이를 포장해 갔다. 내 마음을 헤아려 "나는 저런 이벤트 사양합니다."라고 말하는 아내의 마음 꽃이 장미꽃보다 매혹적이고 달달했다.

사람은 꽃으로 비유되는 것을 좋아한다. 이십여 년 전 아내는 직장에서 동료들끼리 자신을 어떤 꽃에 비유하는지 남편에게 물어보자는 미션을 모의(?) 한 적이 있단다. 잔뜩 기대하며 물어봤을 아내에게 이십여 년 전의 내가 잠깐 생각하더니 "모과"라고 대답하더란다. 예쁜 꽃에 비유되지 못해 실망한 마음을 감추고 왜 모과냐고 물었더니 "생긴 건 별로지만 향도 좋고 쓰임도 많잖아."라고 친절하게 설명하는데 너무 속상해서 울고 싶었단다. 다음 날 남편들이 어떻게 표현했는지 동료들의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나더란다. 장미꽃이나 목련화, 프리지아, 코스모스 등에 비유된 동료들의 얼굴은 꽃처럼 활짝 핀 반면 그렇지 못한 동료들은 아내처럼 울상이 되어 있더란다. 어떤 남편은 '맨드라미'라 해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매사 잘 따지는 모습에 싸움닭이 연상되어 닭 벼슬 같은 맨드라미꽃이라고 하더란다. 어떤 남편은 한 술 더 떠서 아내의 무던한 성격을 빗대 꽃도 아닌 '나무토막'이라 하였다며 한숨지었단다.

그 날 이후 생긴 건 별로지만 쓰임이 많다는 모과만 보면 아내는 속이 상하고 아린 상처가 되었단다. 자존심이 상해서 다른 꽃에 비유해달라는 말도 못하고 혼자서 자존감만 떨어뜨리는 씁쓸한 추억이 되었다 한다. 그러다 올 봄 아내는 우연히 모과 꽃을 처음 보았고, 저렇게 예쁜 꽃을 두고 굳이 울퉁불퉁 못생긴 모과에 자신을 비유했냐며 원망을 했다. 아내는 그 전에도 몇 차례 모과로 비유된 것에 서운한 감정을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별 반응 없이 넘긴 나의 소통법이 아내의 아린 마음을 키우는데 한 몫 했다. 요즘 나는 아내의 바가지(?)를 감내하느라 일상이 버겁다. 봄 길을 산책하다보면 왜 그렇게 어여쁜 꽃들이 눈에 많이 띄는지 그때마다 아내는 "민들레, 제비꽃, 진달래, 벚꽃, 철쭉, 싸리꽃, 배꽃… 저 많은 꽃들을 두고 모과라니!" 한마디 한다. 모과의 꽃말이 평범, 조숙, 정열임을 강조하고, 가을 하늘 노랗게 매달려있는 모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향은 또 얼마나 그윽한지를 강변해보지만 아내는 콧방귀만 뀐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닫고 매화 향에 취해있던 아내를 보며 "당신 매화꽃 같아!"하고 분위기 반전을 꾀해보지만 아내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이종완 농협 안성교육원 교수

좋은 말은 잊어버리기 쉽지만 상처가 되는 나쁜 말은 오래 기억된다.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도 아내는 여전히 자신을 모과로 비유한 말에 서운한 감정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상처가 되는 말과 서운한 감정을 유발하는 말을 줄이며 사는 것이 소통의 기본이다. 명심보감에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솜처럼 따뜻하지만,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가시처럼 날카롭다. 한 마디 말이 잘 쓰이면 천금과 같고, 한 마디 말이 사람을 해치면 칼로 베는 것처럼 아프다."는 말이 실감난다. 온 천지가 꽃 잔치다. 양지꽃, 자운영, 황매화, 수선화, 복숭아꽃이 피고 지더니 장미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라일락, 수국, 작약, 백일홍… 꽃들이 앞 다투어 필 텐데 꽃 잔치가 성대해질수록 남모르게 살짝 한숨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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