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18일 오후 세종시 세종정부청사에 국가보훈처에서 열린 '제29대 국가보훈처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17.05.18. (사진=국가보훈처 제공) / 뉴시스

"솔직히 자네가 이정도로 잘할 줄은 몰랐어~" 야심만만한 여성상원의원 드헤이븐(앤 벤트로프트)이 지옥훈련을 무사히 마친 여군장교 조단 오닐 중위(데미무어)에게 한말이다. 군의 성차별 폐지 법안을 이용해 재선을 노리는 드헤이븐은 해군과 비밀 협상을 한다. 네이비씰 특전단 훈련에 여자 대원이 무사히 훈련을 마치면 군의 남녀 차별을 철폐키로 한 것이다. 조단 오닐이 이 훈련과정에 불과 일주일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할 것으로 예상한 드헤이븐은 이 선거 전략을 이용해서 여성 표를 얻으려고 계산했다, 또 해군은 여자 대원이 포기를 하면 네이비씰의 여성 참여 금지에 대한 명백한 이유가 생긴다는 점을 염두에 뒀다. 서로에게 유리한 윈-윈 협상이라고 본것이다. 하지만 조단 오닐은 온갖 역경을 딛고 네이비씰 특전훈련을 통과한 최초의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물론 현실이 아니라 리들리스콧 감독의 영화 '지아이제인'의 줄거리다. 이 영화가 나왔던 1997년만 해도 미군내 성차별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도 조단 오닐 중위가 진정한 네이비씰 대원으로 인정받기까지는 그야말로 악전고투를 견뎌야 했다.

우리나라에도 영화속의 조단 오닐 중위 같은 인물이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으로 부터 국가보훈처장에 임명된 피우진 예비역 중령이다. 신선하고 파격적인 인사다. 피 보훈처장은 숫한 여군 최초 리스트로 화제를 모으며 유리천장(天障)을 깨트렸다. 청주 출신으로 청주여상과 청주대 체육과를 나온 피 처장은 여성으로서 특전사 중대장을 했고 여군 헬기 조종사도 처음이다. 특히 2006년 유방암 수술 뒤 복무에 이상이 없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군인사법 조항으로 강제 전역 처분을 받았다. 그는 이후 복직을 위해 싸웠고, 결국 불합리한 군인사법은 개정돼 다시 군복을 입을 수 있었다. 당시 피 중령 사건은 군의 재량권 남용과 자의적 차별행위를 공론화해 이를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피 처장을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찬사가 쏟아졌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보다 더 짜릿하고 감동적인 인사는 일찍이 없었다. 역대급 홈런이다"라고 했으며 임태훈 군인권센터소장은 이번인사에 '신의 한수'라고 극찬했다. 피 처장은 2006년전 발간된 '여군은 초콜렛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책에서 "우리는 결코 '치마'를 내세우려고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 여군들에게 '치마'를 강요한다"고 썼다. 사연이 있다. 10여년전 신동아 인터뷰에서 대위시절인 1988년 4성장군인 사령관이 나이트클럽에서 불렀으나 거절했으며 며칠후 다시 특정여군을 보내라고 하자 전투복을 입혀서 보낸 것 때문에 미운털이 박혀 보직해임당한 에피소드를 밝혔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육군 헬기조종사 시절 그의 항공호출명은 남자 동료들이 붙여준 '피닉스(불사조)'였다. 한때 같이 근무했던 동료여성장교는 그에 대해 "군이라는 정글 속에서 밀림을 헤치고 끊임없이 남성이라는 적(敵)과 치열하게 싸워온 이 시대 마지막 여전사, 아마조네스" 라고 했다. 2006년 50대 초반에 전역하면서 도보로 전국을 종주했던 피 처장은 신동아에 "내가 남긴 발자욱이 다음 사람에게 길이 되길 바란다(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고 말했다. 피우진의 불사조 인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