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전날부터 비가 오락가락한 날씨로 무던히도 속을 태웠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거실 창으로 비친 하늘이 뿌옇다. 금방 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아 마음이 초조하다. 우암산 3.1공원 행사장에 도착하니 '충북 여성 백일장' 현수막이 하늘 높이 위풍당당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잠시 후 천막, 테이블, 의자가 도착하고, 앰프시설 설치가 끝나자 한 명 두 명 환한 얼굴로 회원들이 도착했다. 백일장 시작 시간이 임박해지자 참가자들이 몰려왔다. 모두가 기대 반, 설렘 반 오늘을 기다려온 모습들이 박꽃처럼 번져나갔다.

올해로 29회를 맞이하는 '충북 여성백일장'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바람도 비를 참아내느라 나뭇잎을 무겁게 흔든다. 수필 글제는 약속 또는 용서, 시제는 바람 또는 향수로 발표하면서 어느 해보다도 훌륭한 작품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참가자들은 3.1공원 내, 녹음이 짙어가는 나무 아래에 가장 편안한 자세로 글쓰기에 여념이 없다. 자연과 한 몸이 된 모습들은 저마다의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마음의 향기를 자아내고 있다. 아름답다. 저들의 현재 머릿속은 원고지 한 칸 한 칸을 채우기 위해 가시밭길로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글을 쓰는 모습만큼은 정겹고 평화롭게 보였다.

'늦게 피는 꽃은 있어도 피지 않는 꽃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백년 만에 꽃을 핀다는 용설란, 3000년 마다 한 번 여래(如來)가 태어날 때 피어난다는 우담바라 꽃도 있다. 백년, 삼천년은 시간을 초월하는 무한의 의미이며 상징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와 같은 시간은 아니어도 글을 써서 꽃을 피우기까지는 그만큼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오늘 이 자리에는 어떤 이는 문학을 시작한지 수년 만에, 또 어떤 이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두고 꽃을 피우려고 왔다. 모두는 늪지에서 피어나는 가시연꽃이다. 문학이라는 늪지에서 싹이 틔우는 그들은 늪지대에서도 피안 (彼岸)의 세계를 꿈꾸며 사는 사람들이다.

요즘 사람들 중에는 즉흥적이며, 현재만을 향유하며 미래를 꿈꾸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을 본다. 백일장 홍보지를 들고 백화점 문화센터와 여러 곳의 금융기관을 찾아가 고객센터에 게시를 부탁할 때마다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해야만 했다. 겉으로는 지식인양 억지 미소 짓지만 물질 곁에서만 사는 자들은 상대방의 마음속에 머물지 못하고 편방에서만 방황하며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대에 문학을 한다는 것이 녹록지 않지만 우리 여백 문학회는 매년 백일장을 개최할 계획이다.

드디어 20송이 싱싱한 꽃들이 피어났다. 장원부터 참방까지 60대에서 20대까지 다채로운 꽃들이 여백문학회 꽃밭에 심겨졌다. 수필 장원작품은 참가자 모두에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던 '용서'였다 . 둘째로 태어난 아이가 중증심장병인데다 지적장애의 진단을 받고 실심한 남편이 아내와 딸에게 속상한 마음을 표출하여 갈등이 많았으나 '용서란 누가 누구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마음을 풀어내는 것임을 알았다'는 이야기로 글을 꾸려가는 솜씨가 정연하고 문장이 정확하며 주제의식이 뚜렷이 나타난 작품 이었다.

김민정 수필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다'라는 장원의 감사 말에 그동안 고생한 우리 회원 모두는 가장 향기로운 꽃을 선물 받았다. 시상식장 창밖으로 오전 내내 참았던 하늘에서 소낙비를 퍼부었다. 만물이 생기를 내어주고 있는 오후, 밖에는 초여름 교향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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