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 주명덕-홀트씨 고아원. 1965

오늘부터 국내사진계의 '대부'로 불리는 주명덕(1940년생)의 사진작품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주명덕은 경희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해서 사진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그는 대학시절 우연한 인연으로 사진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사진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1966년 서울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열렸던 '홀트씨 고아원'이 그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당시 그의 사진들에서 무엇보다도 주목해야할 점은 모티프이다. 그가 모티프로 상정한 것은 6.25전쟁의 한 흔적인 미군이 남긴 '혼혈' 고아들이었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발표됐던 해 그는 남들이 주목하지 못했던 혼혈고아의 문제에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개인전은 당시 일간지들이 다투어 기사화됐고 한국사회에 커다란 충격과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국전(國展)에 사진부분이 신설된 것이 1964년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당시 예술계에서 사진의 위치가 어떠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주명덕의 '홀트씨 고아원' 전시가 있고난 몇 년 후, 즉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가 창립된 1969년 홀트씨 고아원의 사진들과 기지촌 마을의 사진들 95점과 텍스트들로 구성된 '섞여진 이름들'이라는 제목으로 주명덕 사진집이 출판됐다. 주명덕은 그 사진집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사진은 그 예술성을 따지자면 조형예술 중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런 상태를 사진작가로서 부끄러워할 것은 없다. 그러나 어느 분야의 예술보다 뛰어나야 될 것이며 뛰어날 수 있는 조건을 사진은 가졌다. 사실과 기록이라는 특성으로."

그는 그 이후, 한국의 어두운 부분을 사회 문제화하는 기록사진에서 한국의 가옥(마을)이나 절 그리고 장승 또한 특정의 가정뿐만 아니라 시골아이들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고향이라고 불리곤 하는 모티프들을 다룬 사진작업에 전념했다.

'섞여진 이름들'이 출판되고 난 이후 같은 출판사에서 1971년 또 다른 주명덕 사진집인 '명시(名詩)의 고향'이 출판됐다. 1972년에는 헌사(獻詞)가 아닌 '헌사(獻寫)'라는 제목으로 주명덕의 사진전이 신세계미술관에서 열렸다. 이후 열화당에서 3권의 주명덕 사진집 - 1976년의 '한국의 장승' 그리고 1980년의 '강릉선교장'과 '정읍김씨댁' - 이 출판됐다.

그리고 1981년 수원성을 주제로 다룬 사진집 '수원성(水原城'이 '광장'에서 발행됐고, 1985년에는 일본 求龍堂에서 '韓國の 空間'이 그리고 심설당에서 '사람의 都市'가 출판됐다. 또한 1980년 중반경 절을 찾아다니면서 절의 문창살을 모티프로 찍은 사진들은 1986년 도서출판 시각에서 '절의 문창살 무늬'라는 제목으로 출판됐고, 성철 큰스님을 모티프로 찍은 '泡影集-성철 종정' 사진집이 1988년 장경각에서 출판됐다.

1981년은 '한국의 抒情'이라는 타이틀로 롯데미술관에서 주명덕의 개인전이 열리기도 한 해이다. 1989년 서울미술관에서 그는 풍경사진들로 이루어진 '풍경'이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을 처음으로 개최한다. 1993년 풍경사진들로 이루어진 주명덕 사진집이 일본(京都書房)에서 '잃어버린 풍경(lost landscape)'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1989년 '풍경'은 4년 후 '잃어버린'이라는 형용사가 보충된 '잃어버린 풍경'이 됐다. 왜 그는 형용사를 보충한 것일까? 혹시 이전의 사진에 '결핍'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아니면 그것은 당신이 종종 말하는, 당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그러니까 '뻔한' 풍경사진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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