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노란 꽃술 갖고있는 목백일홍 / 뉴시스

여름은 배롱나무 꽃과 함께 시작된다. 석 달 열흘 피고 지고, 지고 피는 나무, 목 백일홍, 배롱나무 꽃이 지면 여름도 끝난다. 내둔리 진입로에 배롱나무 꽃이 화르르 피어있다. 발가벗은 알몸에 간지럼을 태우면 까르르 꽃잎들이 웃으니 간지럼나무 라고도 한다.

위초리마다 붉은 색을 끝없이 토해내는 꽃들은 어딜 가나 웃고 있다. 무더운 여름 내내 눈을 맞추고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해 주는 꽃은 단종을 향한 일편단심을 표식 하는 꽃으로 성삼문을 비롯 사육신의 무덤가에도 심은 꽃이다.

배롱나무 꽃이 필 때면 나는 근교에 있는 절간에 가고 싶어진다. 절간에 베롱나무 꽃이 많은 까닭은 스님들이 간다는 하직 인사 없이 배낭 하나 걸머지고 홀연히 떠나가는 경우가 많다보니 말없이 떠난 도반을 그리워하며 텅 빈 마음으로 베롱나무 꽃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꽃말이 '떠나간 벗을 그리워함' 이던가,

늦은 오후, 절간에 도착하니 저녁 예불을 시작하는 목탁소리와 낮은 염불소리가 들려왔다. 늙은 느티나무들이 사찰의 역사를 품고 있는 듯 병풍처럼 서 있다. 폭염이 절정을 이룬 산은 산이 낼 수 있는 모든 빛깔로 모자이크를 만들어 빛내고 있다. 경내에는 지난해 보았던 베롱나무 꽃이 만발하여 절간 마당을 압도하고 있었다. 세석평전에 앉아 한 모금 물을 마시며 베롱나무 꽃과 마주한다. 수령이 기백 년 넘은 베롱나무는 몸통뼈와 가죽으로 뒤틀려 있어도 노거수답게 꿋꿋이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실타래처럼 올라가는 곁가지는 수도 하듯 느리게 뻗어가고 있다. 깡마른 북어 같은 몸통에서 맨발의 탁발 스님의 고행을 본다. 그 가지 끝에 달린 소담한 붉은 꽃은 성불로 깨달음의 실체인양 성스럽기까지 하다. 요사채 앞에 어린 베롱나무 한그루도 예사롭지 않은 붉은 꽃을 피우고 있다. 꽃을 보고 있노라면 안드리아 보첼 리가 떠오른다. 그의 노래 중 'mai piu. cosilontano' 는 베롱나무 꽃의 전설과 오버랩 되어 절실한 그리움을 솟구치게 한다.

김민정 수필가

선천적인 녹내장으로 12세 때 시력을 잃은 안드리아 보첼리의 달콤한 목소리에는 애수에 젖은 애련함으로 다가와 더욱 심금을 울린다. 보첼리의 불꽃같은 두 눈이 여기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것만 같다. 사람은 저마다 꽃을 피웠다가 진다. 누구는 한 여름 같은 화려한 삶을 살다가는 사람도 있고, 잠시 동안이지만 폭풍의 한 가운데를 사는 사람도 있다. 화양연화였든, 상처투성인 사바의 세계였든, 피고 진다는 것은 일대기를 채워가는 각자의 운명이고 숙명이다. 다만 부끄럽지 않게 산다는 것이 아름다움 이라 생각한다. 베롱나무 꽃은 질 때도 제 색깔로 화려하게 진다. 기세등등하게 색깔을 내며 피를 토하 듯 우르르 떨어진다. 인간은 시시각각 변하는 갈대와 같은 모순적인 존재이다. 그렇게 나약한 갈대 같지만, 그 모순 사이에 누군가에게 간절한 여운을 남길 수만 있다면 제 색깔을 가졌다 할 수 있지 않은가, 아직도 귓가에서 보첼리의 노래가 맴돈다. '이제 다시 헤어지지 말아요, 당신은 내가 필요로 하는 단 한사람 오직 당신입니다.' 안드리아 보첼리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가장 달콤한 꽃이다. 내려오는 길이 한 장 한 장 페이지가 넘어가듯 새로운 풍경에 공기마저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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