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이야기] 제천여중 수석교사 김현식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업습니다 / 클립아트코리아

30여 년 만에 함께 대구 갓바위 야간산행을 하던 초임지의 제자(함께 나이 쉰을 훌쩍 넘긴)가 내게 응원의 덕담을 건냈다.

"선생님! 여전히 민첩하시고 영민하십니다."

아마도 오르막이 힘겨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때때로 휘청거리는 나를 위로하고 싶었으리라.

'영민하기는 개뿔!' 산행이 며칠 전부터 약속 돼 있었음에도 난 지금 굽 높은 샌들을 신었고 통 좁은 치마를 입었었으며 산행에 적합한 최소한의 준비도 하지 않고 있었음이다.

그랬었다. 젊은 시절 나는 꽤 민첩하고 영민했었다. 매사 정확하고 분명하여 교만하다 못해 오만방자 했었다. 설혹 부족하거나 모자람이 있었다 해도 배워 채우면 그만일 젊음의 특권을 톡톡히 누렸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허술해지기 시작했다. 생각과 행동이 둔해지고 시력과 청력과 기억력 또한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출정 준비를 마친 장수의 칼날과도 같았던 그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삶이란 잃은 것이 있으면 분명 얻은 것도 있는 것이므로.

그림과 천하를 맞바꾸었다고도 평가 받는 송나라 휘종 황제는 시. 서. 화(詩 書 畵)에 달통한 예술가였다. 당시 황궁의 화가를 뽑는 과거에서 '깊은 산 속에 숨은 오래된 절'을 그림으로 표현하라는 심산장고사(深山藏古寺)를 화제(?題)로 내렸다. 이미 과거(科擧)의 몇 단계를 거쳐 최종으로 황제 앞에 앉은 천하의 내로라는 화공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라니 고민이 깊었으리라. 결국 이 과거의 장원은 '첩첩이 깊은 산 중에 절은 보이질 않고 다만 물지게를 짊어진 스님이 오솔길을 총총 걸음으로 올라가는 그림'을 제출했다고 한다. 상상력과, 관찰력과 구성력과 표현력을 동시에 아우르는 현문현답(賢問賢答)이었다. 나는 이 엄청난 내공을 갖춘 휘종황제의 주옥같은 발문과 그에 걸맞은 답(答)에 한동안 매료되었었다.

제천여중 수석교사 김현식

돌이켜보면, 내 지능과 오감을 비롯하여 총체적 삶이 허술해짐에 따라 새롭게 얻어지는 것들이 많았다.

글의 행간에 심안(心眼) 열리고, 말하지 않는 말에 귀가 열렸으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이 열렸고, 무엇보다 세상의 이치에 거부감 없이 순응하게 되었음이다.

세상살이가 한결 단순하고 편해졌으며 복잡할 이유 또한 없다. 다만, 아직은 가르쳐야할 사명이 남은 내게 주어진 과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형상화하여 가르칠 것인가?" 에 대해 장고(長考)에 장고를 거듭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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