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한인섭 부국장겸 정치행정부장

잎담배 / 뉴시스

30~40년 전에만 해도 시골 농가의 처마 밑에 진한 황금색 잎담배가 몇다발씩 매달려 있던 모습이 흔했다. 담배농사를 짓지 않는 농가들도 행여 쓸 데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잎 담배가 지닌 약용효과가 제법 쏠쏠 했기 때문이다.

마른 잎담배는 염증 치료에 썼다. 농사일을 하다 '연장'에 다치기라도 하면 잘게 썬 것을 환부에 붙였다. 피하조직과 진피 사이에서 발생하는 화농성염증 치료제로 썼던 것이다. 좀 더 세련된 약재로 쓰려면 썬 담배잎을 달여 찌거기를 짜 엿처럼 졸인 것을 사용하기도 했다. 뱀에 물렸을 때도 효과를 발휘했다. 말리지 않은 것을 그대로 찧어 상처에 붙여 독성을 제거하기도 했다. 마른 담배잎을 그대로 붙이거나, 불에 태워 만든 담배재를 붙이기도 했다.

허리 통증이나 담 치료제로 효과를 보이기도 했다. 뜨끈뜨끈한 방바닥 아랫목에 수건이나 헝겊을 정갈하게 깔아 놓은 후 물에 축인 잎담배를 다시 수건으로 덮은 후 밤새 허리를 지진 이들은 다음날 꺼뜬하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통증 치료제 였던 셈이다. 심지어 말린 잎담배를 치질의 일종인 '치핵' 치료제로도 썼다고 한다. 잎이 지닌 성분을 그대로 피부에 작용하게 하면 이같은 치료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한방에서는 아예 약재로 대접해 '연초'로 불렀다. 소화 불량에서 통증 완화, 종기, 옴, 버짐과 개나 뱀에 물린 데 효과가 있다고 소개할 정도였으니, 농가에서 사용했던 민간요법이 제대로 '맥'을 잡았던 것이다. 잎담배 주요성분인 '니코틴'이 피부에 직접 작용한 효과라 하겠다. 연기를 코로 흡입하면 각성효과가 있다. 심지어 옛날의 주술사들은 가공하지 않은 담뱃잎을 그대로 말아 피울 때 발생하는 각성효과를 이용해 예언도 했다하지 않는가. 통상적으로 담배를 피우려는 것은 진정효과 때문이다. 연기를 흡입하면 뇌의 흥분을 야기하는 호르몬과 아드레날린 분비량을 늘어 불안이 해소돼 차분하고 편안해 진다. 그러나 니코틴 원액은 60㎎(성인기준)만 인체에 유입돼도 치명적이다.

한인섭 부국장겸 정치행정부장

7일 의정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는 이른바 '니코틴 살해' 부인과 내연남에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송모씨(48·여)는 2016년 4월 22일 내연남 황모씨(47)와 짜고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송씨는 경기도 남양주시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던 남편 오모씨(당시 53세)에게 니코틴 원액을 주입했다고 한다. 담배를 피우지 않은 오씨 몸에서 니코틴과 수면제 성분이 검출된 점을 눈여겨 봤던 검·경은 송씨가 신체에 주입했다고 보고 기소했다. 주입 방법이 입증되지 않아 논란은 있었지만, 재판부는 "정황만으로도 충분하다"며 검찰의 구형량을 그대로 인용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니코틴 살해'를 인정한 판결이다. 니코틴을 남편 살인도구로 썼다니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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