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미영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업습니다 / 클립아트코리아

안티에이징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나 역시 한 때 세월의 흔적이 역력해진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안티에이징에 애를 쓴 적이 있다. 늙음이란 어찌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른 너무나도 자연스런 현상인데,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젊음만을 예찬한다. 필자는 아직 젊다고 하기도, 이미 늙었다고 하기도 어려운 애매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보니, 새삼 늙어감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유년시절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마당에서 각종 과일나무, 채소류를 직접 키웠는데, 가끔 나에게도 '얼마나 예쁘니? 이 나무는 예쁜 꽃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 맛있는 열매도 주고'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사과꽃, 살구꽃, 노란 오이꽃, 보라빛의 가지꽃 등 꽃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열매로 바뀌는 것을 보며 자란 덕분에 '꽃잎이 열매로 바뀐다'는 생각을 했을 뿐 '꽃잎이 시든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다. 고교를 졸업한 후 대학을 다니기 위해 시골 집을 떠나 도시로 나가 살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는 유실수의 꽃을 거의 보지 못했다. 유실수의 꽃이 피는 시기에는 여지없이 학기 중이었고, 방학이 되어 돌아가면 이미 꽃은 지고 없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에 도시에서 산 시간이 길어질수록 '열매를 맺는 꽃'을 잊어버리고 지내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열매를 맺어가는 꽃'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고, 대신 뿌리가 없이 물통 속에 꽃혀 있는 장미, 국화 등을 더 자주 보게 되었다. 나는 당시 경제적인 형편이 여유롭지 못한 학생에 불과했었기 때문에 꽃가게 유리창 너머로 신선한 상태의 꽃을 아쉬운 마음에 쳐다보기만 하다가,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마친 후 '꽃을 가져가고 싶은 사람은 가져가라'는 직원의 말에 정말 신나게 꽃다발을 챙겨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마냥 기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날 이후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가는 꽃을 보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필자로서는 꽃병속에서 시들기만 하는 꽃이 매우 생소했다. 그 날 이후 집에 꽃다발을 가져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똑같은 꽃이고, 똑같이 시들어가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시간상으로는 정말 똑같이 시들어가는데, 시골집에서 본 꽃들과 도시 꽃가게에서 본 꽃들을 보는 느낌이 확연히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영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나는 문득 나이들어감에 대해서 좀 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부터 늘어가는 얼굴 주름을 한탄하며 시간을 거슬러 안티에이징을 위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삶의 열매를 맺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시간을 오롯이 사용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늙어가는 것은 연약한 꽃잎에서 단단한 열매가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내가 젊고 예뻤던 시절에는 매순간 겪는 여러 가지 일들에 당황하고 힘겨웠었던 것에 반해, 지금은 아쉽게도 얼굴에 주름은 늘어가고 있지만 그 대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쌓여온 경험 덕분에 같은 상황이 닥쳐도 웃으며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겨서 좋다. 나는 가끔 삶의 무게를 견뎌내느라 굵어지는 주름에 속상하기도 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 덕분에 비록 작지만 나만의 열매를 맺어왔고, 앞으로도 매 시간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언젠가는 더 크고 단단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기대에 늙어감, 나이들어감을 마냥 싫어하지는 않는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