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박현수 숲해설가

/중부매일 DB

무심천 도감이 나온 후 무심천에 살고 있는 물고기 이야기만 하다 보니 어느새 가을을 훌쩍 지나와버렸습니다. 지금처럼 아름다운 시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햇볕마저도 눈에 담고 싶어집니다. 이제 겨울을 맞이해야 할 생각에 서러운 감정은 떨어지는 잎으로 눈이 갑니다. 청주시를 상징하는 가로수로는 플라타너스라고 하는 양버즘나무입니다. 청주의 자랑에도 속해있는 가로수길은 청주의 입구부터 중심지까지 그 모습을 자랑합니다. 매번 가지를 잘라도 언제 이렇게 풍성하게 잎과 줄기를 맺는지 느린 것 같지만 한 순간에 바뀌는 놀라운 마술과 같습니다. 누렇게 떨어지는 잎을 보며 좀 남겨두면 안 되나 바람해보지만 부지런한 분들에 손은 쉬지 않습니다.

근데 나무들은 어떻게 알고 잎을 떨어뜨릴 준비를 할까요? 또 어떻게 단풍을 만들까요? 이런 원리적인 궁금증은 생물학에서 다뤄집니다. 잎은 다양한 기능을 하는데 바로 우리의 지각 능력과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꽃을 피우는 것도 잎이 밤의 길이를 파악해서 그 시기를 조절합니다. 빛에 민감한 색소인 피토크롬과 크립토크롬이 빛에 반응해서 빛에 연관된 생리적인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늘이 졌다는 것도 인지하고 간판이나 가로등이 있는 여부도 알 수 있습니다. 꽃 이야기를 간단히 더 하면 꽃이 피는 시기를 인지하는 것은 알아냈지만 무엇이 꽃을 피우게 하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다가 개화에 관여하는 호르몬이 밝혀져 개화호르몬이라는 플로르겐을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플로르겐이 어떤 성분인지는 정확하게 파악을 하고 있진 못합니다.

다시 돌아와 이 빛에 민감한 색소인 피토크롬과 크립토크롬은 잎을 떨어뜨릴 시기도 정하게 됩니다. 개화하는 것처럼 호르몬 신호를 보내게 되는데 늦여름에 길어지는 밤의 길이를 인지해서 호르몬 신호를 보내 월동을 준비하게 됩니다. 나무는 바로 잎에 있는 엽록소를 노화엽록소로 변하게 하는데 이때 클로로필라제라는 효소를 생성되어 엽록소에 있는 피톨을 제거하게 됩니다. 피톨이 제거된 엽록소에는 붙어있던 단백질이 떨어져 나가게 되고 변화가 시작됩니다. 엽록소를 잃은 단백질이 불안정 상태가 되어 아미노산으로 분리되는데 잎은 아미노산을 수액에 녹여 뿌리나 저장 기관에 보내게 됩니다. 수액과 섞인 아미노산은 다음 해에 쓸 에너지로 사용되고, 어는점을 올려서 중요한 기관의 냉해를 막아냅니다. 우리가 이른 봄에 먹는 고로쇠 수액도 지난해 만들어 뿌리에 저장되었던 아미노산 수액을 빼서 먹는 것입니다.

단백질이 떨어진 엽록소 역시 파괴되어 잎에 초록색이 점점 줄어듭니다. 그러면 광합성을 보조하던 노란색 계열의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드러나게 되는데 이때 노란색 단풍이 들기 시작합니다. 또 가을이 되면 잎에서 대량의 안토시안 합성이 일어나는데 안토시안은 붉은색에서 보라색까지 갖고 있는 색소입니다. 그래서 붉은색의 단풍이 드는데 이 안토시안 색소의 합성이 왜 일어나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타닌이 있는데 타닌은 떫은맛을 내는 성분으로 감, 도토리, 밤 껍질에 많이 있는 성분입니다. 식물 전반에 타닌이 펼쳐져 있는데 단풍의 노란 갈색이나 짙은 갈색을 담당하게 됩니다. 늦가을이나 이른 봄에 깊은 산속 맑은 계곡을 가면 뿌연 색의 계곡물을 볼 수 있는데 타닌이 물에 녹아 나오는 것으로 수질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단풍은 이런 색소들이 다양한 분포 하거나 색소의 양에 따라 색이 달라집니다.

박현수 숲해설가

이렇게 단풍이 된 잎은 땅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잎이 떨어지면 나무의 겨울 준비는 다 끝나게 됩니다. 나무를 보면서 잎이 어떤 색소로 인해 이렇게 되었겠구나 생각하면 궁금함이 풀리긴 하지만 낭만이 없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길에도 공원에도 하나도 같지 않은 단풍들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룹니다. 그것은 각각 다른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에서 나는 생명의 입김을 볼 수는 없지만 우린 느낄 수 있습니다. 항상 달려가는 우리에게 넓은 팔을 벌려 안아주는 그 모습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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