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16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장성동의 한 원룸의 기둥이 지진의 영향을 받아 심하게 파손되어 있다. 2017.11.18. / 뉴시스

지진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있다. 섬나라 일본이다. 강진이 워낙 잦다보니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흔히 등장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1973년 출간된 SF작가 코마츠 사쿄의 소설 '일본침몰'이다. '일본침몰'은 1973년과 2006년 두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져 엄청난 반향(反響)을 일으켰다. 줄거리는 이렇다. 일본 스루가만에서 규모 10이 넘는 사상초유의 대지진이 발생한다. 이어 도쿄, 큐슈등 전역에서 강진이 잇따라 발생해 일본전역은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미국지질학회는 이것이 일본의 지각 아래 있는 태평양 플레이트가 상부맨틀과 하부맨틀의 경계 면에 급속하게 끼어들어 일어나는 이상현상으로, 일본열도가 40년 안에 침몰하게 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하지만 지구과학박사 타도코로(토요카와 에츠시)는 독자적으로 조사를 실시해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발생된 다량의 박테리아가 메탄가스를 생성, 그것이 윤활유 작용을 통해 태평양 플레이트의 움직임을 가속화 시켜 정확히 338일 후 일본이 침몰한다는 것이다. 소설은 1년만에 400만권이 팔리고 영화는 650만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 속 현실은 참혹하긴 하지만 실제 현실보다는 덜하다. 2011년 6월 동일본에는 규모 8.8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역사상 지구상에서 발생한 다섯 번 째로 큰 지진이었다. 이로 인해 쓰나미가 일본 동부해안을 무참히 강타하는 뉴스화면을 보면서 잔율(戰慄)을 느꼈다. 곡창지대가 갯벌이 되고 도시가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을 보며 대자연의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세계최고수준의 재난경보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는 일본이지만 막상 재앙이 닥치자 속수무책이었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 일본 수상은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주목을 끈 것은 일본인들의 대응자세다. 엄청난 참화(慘禍)속에서도 뉴스화면에 나온 주민들이 울부짖거나 무질서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하철 운행이 중단돼 시민들의 발이 묶이고 차량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지만 주유소에서 비상차량에게만 주유해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재난의 한가운데에서 헬기탈출의 위급한 상황에서도 줄을 서서 차분하게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포항지진은 규모 5.4였다. 이런 역대급 지진이 1년새 두 차례 발생한 것이 심상치 않다. 포항지진을 예측한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한반도 지각이 움직이면서 내부에 쌓여있던 응력(stress)이 방출되고 한반도 지각에 큰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한바 있다. 규모 6.0의 강진이 또 올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포항지진으로 수능시험이 연기되고 포항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 크고 작은 피해가 잇따랐지만 혼란은 없었다. 다만 전국에 42만가구에 달하는 다세대주택이 지진의 위험에 노출돼 있고 벽 없이 기둥으로만 건물을 지탱하는 '필로티'구조의 오피스텔과 아파트도 불안하다는 보도가 있다. 내진설계와 충격흡수 장치는 이제 시공과정에서 필수가 됐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시급한 것은 국민들의 성숙한 질서의식이다. 구제역을 차단하기 위해 통행차량에 소독약을 뿌리면 세차비 달라고 떼를 쓰거나 화재가 발생해 소방차가 지나가려해도 소방도로에 물건을 쌓아놓고 딴 짓하는가 하면 악천후 때문에 비행기가 연착됐다고 공항에서 난리를 피우는 일이 흔하다면 거대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 통제하기 힘들 것이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영화 일본침몰을 연출한 히구치 신지감독은 " 일본은 지진과 화산활동이 많은 나라다. 언제나 위기감을 느끼며 살아 간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일본에 비해 위험도가 낮다고 하지만, 우리나라가 언제까지 지진 공포의 안전지대로 남을지 알 수 없다. 흔히 일본을 메뉴얼 사회, 우리나라를 임기웅변의 사회라고 한다. 메뉴얼에 따라 재난대비 훈련이 잘된 일본은 자연재해에도 잘 극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메뉴얼대로 하면 손해 본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대형재난이 발생하면 나홀로 살길을 모색하다가 혼란을 자초한다. 메뉴얼 사회 일본에 대해선 삐딱한 시선도 있다. 그만큼 융통성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의식과 준법정신이 몸에 뱄다면 대재앙도 극복할 수 있다. 전쟁이든 긴급재난이든 충격적인 현실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국가와 국민의 품격을 보여준다. 히구치 신지 감독은 "거대한 재난이 벌어지면 일본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걸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자 <일본침몰>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화속 상상은 현실이 됐다. 우리는 '포항지진'이라는 실제 상황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