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하늘의 뜻인지, 사람의 잘못 때문인지 모를 자연재해 때문에 놀라기도 하지만 우리는 인간의 악행에 더 놀란다. 그 악행이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 일 때, 남의 일 같지만 우리 일이기도 하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위기 중 가장 심각한 상황은 인권 유린에 해당하는 폭력문제가 아닐까. 특히 위기 여성의 문제가 많다. 여성가족부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의하면 지난 5년 간 가정폭력은 5배로 늘었고, 2016년 4만 5,453명의 피해자 중 여성이 74.4%를 차지한다. 하지만 여전히 가정폭력은 높은 담장 안에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이를 담장 밖으로 끌고 나와 해결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또 다른 피해유형으로서 성폭력도 당시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전 생애에 걸쳐 영향을 미치므로 이들의 회복을 위한 지원서비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폭력 피해를 당하면 우선 1366이나 성폭력상담소, 보호시설, 해바라기 센터 등 관련 기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굳이 이 기관의 연락처를 알지 못해도 112, 119, 129 등의 긴급전화를 이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여성 긴급전화 1366은 365일 24시간 운영되면서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폭력피해자의 상담욕구에 대응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2016년 한 해 동안 이루어진 상담 건수는 26만 7천 건, 이 중 가정폭력이 61.8%를 차지한다. 충북도 2016년 한 해 동안 9,635건의 상담이 이루어졌고, 가정폭력 문제가 5천945건으로 61.7%나 된다.

폭력 피해를 당한 위기여성들의 '긴급피난처'는 긴급히 숙식지원이나 정신적·육체적 안정과 상담, 치료 등을 필요로 하는 피해여성과 자녀가 함께 입소할 수 있다. 폭력 사건에 대한 피해자 임시보호제도로서 경찰에서 지원하는 것도 있지만 이는 단순 '숙박'지원에만 그치고 있어 맨몸으로 뛰쳐나온 여성들의 식사나 의료 지원 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정춘숙 의원의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2017년 7월까지 경찰의 임시숙소 이용 건수 11,987건 중 94.3%인 11,300명이 여성이었는데 주로 모텔 같은 임시숙소에서 혼자 불안에 떨게 된다고 지적하였다.

위기여성을 위한 긴급지원 체계로서 긴급피난처는 충북 전체에 한 군데 밖에 없어 원거리 이용자들의 불편과 이들을 돌봐야 하는 직원들의 소진이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피난처는 곳곳에 소규모로 운영되어야 하지만 여건이 충분치 않다. 연구를 위한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피해여성과 자녀들이 피난처에 머무르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여러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 여성들이 위기에 처해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이들이 좀 편한 마음으로 각각 분리되어 보호를 받을 수는 없을까. 현실적으로 이용자가 몇 명인지, 며칠을 머물다 가는지 등의 효율을 따지면 대안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피해 여성과 아이들이 안심하고 후일을 도모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정과 치료에 필요한 기간 동안 최선의 보호를 해야 할 의무가 국가와 사회에 있다.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근본적으로 피해여성 지원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폭력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법의 집행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가정폭력은 반사회적인 범죄행위로서 형사책임이 무겁게 부과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와 적용이 필요하다. 영국처럼 가해자를 집에서 몰아내어 집을 떠나도록 하는 '점거명령제'를 만들거나 미국처럼 '추정구속제도'를 두어 현장에서 폭력이 없더라도 경찰이 추정해 폭력이 있었다고 인정되면 가해자를 체포해 격리시킨 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 이로써 더 이상 피해여성들이 내 집을 떠나지 않고 상처 난 몸과 마음을 편안히 자신의 안식처에서 치유 하고 보호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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