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 클립아트 코리아

평소에 얌전하던 사람도 운전대를 잡으면 난폭해지는 경우가 있다. 운전 중에는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거나, 위협적인 타인의 운전에 거친 언사가 튀어 나오기도 하고 분노가 표출되기도 한다. 근래에 뉴스에서도 운전자끼리 주먹다짐을 하고, 서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속도전을 벌이는 난폭운전, 보복운전의 모습들이 흔하게 보도되고 있다. 차라는 공간에서의 익명성 때문인지 위험상황에 놓이게 되면 나도 좀 과격해지는 편이다. 평소에 쌓아놨던 감정들이 분출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를 욱한다고 표현하면 맞는 것 같다. 운전 상황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도 분노, 화, 슬픔, 절망, 괴로움, 좌절감, 열등감이 만연해 있다. 묻지마 폭행, 살인 등 부정적 감정이 쌓여 있다가 아주 사소한 것에 폭발해 사건이 터지는 것이 일상화 된 것이다. 그만큼 지금 사회가 살기 힘들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 싶다.

개인의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인 화를 못 참는 것에 대해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는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란 책을 통해 조명했다. 화가 끓어오를 때 스스로 소화하지 못한 분노를 남에게 전가할 권리는 없다고 설명한다. 아이가 화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더라도 부정적 감정을 소화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역할로 규정한다. 나의 부정적 감정을 처리하고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스스로의 몫이고 나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긴다. 그 예로 동일한 상황에서도 감정처리를 잘하는 사람은 화를 안낸다고 설명한다.

예전에는 분노나 화를 너무 참아서 오히려 신체적으로 이상증세가 나타나는 화병이 많았다면, 이제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감정 조절이 어려운 분노조절장애 유형이 자주 목격되곤 한다. '화'를 잘 다룰 줄 안다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화를 다루는 방식을 부모를 통해 간접적으로 터득하거나 그런 학습이 어려웠다면 개인 성장 과정 중에 자기 수행과 감정 다루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기본적으로 화병이 나지 않게 사람들 가슴에 화가 생기지 않게끔 사회가 살맛나는 곳이 된다면 가장 좋다는 원론적인 이야기 될 수도 있지만 개인에게 있어서 '화'란 결국엔 외부환경에 대한 자극에 내가 어떻게 반응할 건지 스스로 결정짓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진짜 어른다운 어른이란 '화'를 얼마나 세련되고 유려한 방식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느냐가 기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나조차도 아직은 그 방식을 찾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화가 나면 입에서 나오는 뱉어놓고 나면 후회할 거친 말들, 거친 행동들을 보면 나는 아직도 그 방식을 찾아가는 중인 '어른아이' 어디쯤인 듯하다. 끓임 없이 스스로를 관찰하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편견 없이 직면 한다는 것이 정신수행을 업으로 삼는 성인들조차도 쉽지 않은 일인데 나 같은 범인[凡人]이야 오죽할까. 여기서 중요한건 자각이다. 그 이후에 '화'에 대해 생각하고 그 행동이 옳았는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지 고민해보는 의식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식을 놓지 않으려는 자기 관찰이 일상화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 성숙한 사회일 것이다. '화'라는 감정 자체는 내가 아니지만 그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의 주체자는 어디까지나 '내'가 되고 거기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겠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