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미영 변호사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학창시절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은 그저 한 끼 식사에 불과했다. 도시락 밥·반찬에 담긴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기는 커 녕 친구들과 떠들며 대충 먹으면서 '남기면 야단맞는 도시락'을 남김없이 다 먹는 것에만 집중했다. 고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 타지에 있는 대학에 다니면서부터는 '사먹는 밥'에 익숙해졌고, 어쩌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은 어쩐지 싱거워 맛이 없게 느껴졌다. '우리 딸이 나가서 사먹는 밥에 익숙해지더니 집 밥이 이제 맛이 없는 모양이구나'라며 섭섭함을 담아 무심하게 내뱉은 엄마의 말씀도 그다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변호사가 하는 일이란 것이 결국에는 사람을 만나는 일의 연속이다. 사람을 만나 일을 하다보면 점심시간을 놓치거나, 샌드위치 등으로 간단히 배를 채울 때가 많다. 변호사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무척 힘든 상황에 처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상치 못하게 상담시간보다 길어질 때도 많고, 상담을 뒤늦게 마치고 나면 곧장 법원으로 가야 할때도 있고, 점심을 거의 거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낮 시간동안 상담 및 재판 등을 하다보면 막상 서면 작업을 할 시간이 부족해 부득이 저녁시간에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린 아들이 잠들기 전에 귀가하려는 마음에 저녁도 거르거나 주로 사람들과 저녁 약속이 있어 저녁 식사의 대부분은 사먹는 편이다.

최근 유달리 바빠진 일정 탓에 제대로 된 식사, 즉 따뜻한 밥과 반찬이 있는 식사는 물론 집에서 밥을 먹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조그만 가방 하나를 내미셨다. 그 가방은 지퍼가 녹슬어서 닫히지도 않는 수 년 전에 사용하던 보온도시락을 담는 가방이었다. 이 나이에 무슨 도시락, 그것도 보온 도시락인가 싶었지만, 필자를 위해 도시락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제는 어린 아들의 엄마가 된 필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어서 별 말없이 들고 나왔다.

점심시간이 지났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닫고 문득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이 생각나 별 생각없이 꺼내 먹었다. 오래 전 학창시절에 먹었던 도시락과 거의 비슷하게 김치, 소시지, 김 같은 평범한 반찬에 보온도시락의 위력으로 아직은 따뜻한 기운이 남아있는 밥일 뿐인데.. 어쩐지 눈물이 핑글 돌 만큼 맛있고, 다 먹고 나니 어쩐지 힘이 나는 기분이었다. 맛 집 정보가 넘쳐나고, 건물 밖으로 한 걸음만 나가면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많지만 느낌 탓인지 배부른 포만감이 유지되는 시간은 식당 음식보다 보잘 것 없는 도시락 쪽이 훨씬 길게 느껴졌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직접 아이에게 밥을 해주어야 하는 엄마가 되어 보니, 인공적인 조미료를 쓰지 않고 음식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지, 그리고 한 사람을 위해 준비하는 음식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 담겼는지 이제는 깨닫게 되었고, 그런 밥이 담긴 도시락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너무 잘 알게 되었다. 이번 한 해 '언제 식사 한 끼 합시다'라고 하는 말은 수도 없이 내 뱉었지만, 실제로 감사한 사람에게 언제 손수 만든 식사를 대접한 적이 있었나 되짚어 생각해보았다. 연말연시 거리는 반짝이는 불빛으로 가득하고, 수 많은 음식점이 즐비하고, 그 음식점 안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술에 곁들여 먹는 안주 정도로 때우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미영 변호사

연말연시 여러 사람과 함께 들뜬 분위기의 식당에서 음식을 함께 사 먹는 것도 좋지만, 올 한 해 감사한 분들과 남이 만들어준 음식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만들어 정성이 담긴 음식을 함께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정말 감사함을 표현해야하는 부모님, 가족들과의 식사를 미루지 말고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누어 먹는 따뜻한 연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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