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 클립아트코리아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수능을 치르고 대학 새내기가 되는 아이들은 긴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선택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수시로 대학합격이 정해져 어느 대학을 선택해야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아이도, 애타게 추가합격을 기다리던 아이도 선택은 이미 정해져있으리라. 이제는 정시다. 복잡한 입시 자료를 검토해 보고 떨리는 마음으로 서류를 낼 때이다. 고3 부모가 되기 전에는 수능이 끝나면 입시가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수능을 치르고 나니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시원서 6장과 과학기술원에 원서를 넣었다. 고맙게도 1차에 합격이 되어 광주, 울산, 서울, 대전으로 면접을 보러 다녔다. 면접도 제시문 면접이라 수학, 물리, 영어를 공부해야 했다. 사상초유로 일주일 연기된 수능을 치렀건만 아들은 면접 준비로 쉴 틈이 없었다. 입시는 인생에서 선택과 집중의 싸움이다. 대학선택과 진로 결정에서 누구의 선택이 옳았고 누가 더 많이 집중했는지가 승패를 가른다. 이것저것 다 잘하려고 하다가 지치기만하고 모두 놓칠 수 있다. 짧은 시간에 어떤 공부를 해야 할 지 판단을 해야 한다.

아들이 전국으로 면접을 다니는 동안 운전을 해서 같이 가기도 하고 교통편 알아보는 것도 내 몫이었다. 아들을 면접실에 들여보내 놓고도 좌불안석이다. 면접대기실이 있어도 애타는 부모들은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다. 굳게 닫힌 면접실 문 앞에서 추위는 아랑곳없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오직 내 자식이 떨지 않고 면접 잘 보기만을 기도하며 서 있다.

초 중 고 12년 무엇을 위해 한무릎공부를 하였던가.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해서 한 눈 팔지 않고 달려온 아이들의 시간을 알기에 간절함이 더해진다. 내 아이가 한국에서 최고라고 하는 이 대학에 가기위해 어떻게 공부하고 활동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부모들이기에 간절함이 가득 배어있다. 그런 면접을 보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궁싯거리던 날들이기에 결과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실망하고 있을 아들에게 이야기 해 주고 싶었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어느 학교인지가 너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어떤 사람인지가 너의 학교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닫힌 문에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문을 향해 노력하다보면 길이 열린다고 이야기 해 주고 싶지만, 내색 않고 최대한 버티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아꼈다. 무너지는 나의 마음을 행여 아들에게 들킬세라 나 역시 말과 행동을 절제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데 있도다'라고 말했다. 저마다 지닌 '기름 두 방울'의 의미는 다를 것이다.

모임득 수필가

고통이 없다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알 수 없다. 불합격이라는 시련이 있기에 현재 선택한 대학이 더 소중할 테다. 대학 간판에 마음이 쏠려 숟가락 속에 기름이라는 큰 꿈을 잊은 건 아닌지, 숟가락의 기름만 생각하느라 지금 이 순간 느껴야 되는 열아홉 살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으면 싶다. 자신이 맡은 것은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 기름 두 방울을 기억가면서 살아갈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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