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택 作 '너른 못 005. 2004'

노순택의 딸 노을(7)은 '황새울 사진관'에서 반사판을 들고 아빠가 사진 촬영하는 것을 도왔다. 노순택의 부인 김평씨는 남편이 촬영하는 마을사람들을 일일이 인터뷰하는 것을 도왔다. 따라서 '황새울 사진관' 작업은 노순택 가족의 공동프로젝트 작업이 되는 셈이다. 노순택은 '강귀옥 할머니' 사진에 다음과 같은 텍스트를 비치했다.

"대추리에 사는 일흔아홉 살 강귀옥 할머니는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지만, 이곳에 산지 어언 40년이 넘었다. 그 때 대추리는 사람 사는 마을 같지가 않았다. 미군 불도저에 집과 땅을 잃고 떠밀려 나온 주민들은 옛대추리 옆 산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겨우 목숨을 부지할 정도였다.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렇게 어렵게 살아온 마을 사람들을 또 쫓아낸다니, 그건 안 될 일이여.' 할머니는 들에서 우렁이를 잡다가 해가 뉘엿뉘엿할 때 사진관에 찾아왔다. 한 평생을 들녘에서 살아온 분이었지만, 고운 한복을 갈아입자 고생이라곤 모른 채 곱게 늙은 할머니만 같았다."

강귀옥 할머니는 어느 할머니처럼 다정하고 온화해 보인다. 그런데 강귀옥 할머니의 '도플갱어'가 있단다. 강귀옥 할머니의 도플갱어는 노순택의 <너른 못 005> 중앙에 '미국기지 확장반대' 문구가 쓰여진 머리띠를 두른 '냉담'한 표정으로 등장한 할머니다. '너른 못 005'에 노순택은 다음과 같은 텍스트를 보충했다.

노순택 作, '강귀옥 할머니. 2005'

"나는 2005년 여름 사진관에서 찍은 할머니를 2004년 2월의 필름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붉은 머리띠를 질끈 묶은 채 결연한 투사의 모습이었던 강귀옥 할머니. 인생의 황혼을 맞는 이 분의 머리에 붉은 머리띠를 동여맨 이 나라는 대체 제 정신일까."

노순택의 '황새울 사진관' 프로젝트는 미군기지확장 예정지역으로 강제이주의 위기에 처한 경기도 평택 팽성읍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위해 촬영한 초상, 부부, 가족사진, 이웃사진 등을 '마을사진첩'으로 출간하는 프로젝트이다. 노순택의 '황새울 사진관' 프로젝트는 "주민들의 상심을 달래고, 오랜 세월 함께 울고 웃었던 이웃들의 얼굴을 새삼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통해 위기에 처한 마을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필자는 지난 연재에서 구본창과 노순택의 사진작품을 '급진적인 사진'으로 중얼거렸다. 이미 감 잡으신 독자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그렇다! 필자가 생각하는 '급진적인 사진'이란 일종의 '포토 인 라이프'이다. '포토 인 라이프'는 '사진의 고향이 어딜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사진의 고향은 다름 아닌 인쇄매체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노순택의 사진/텍스트는 대추리의 문제를 환기시키기에 훌륭한 '무기'이다. 문제는 그 사진을 어느 '공간'에서 어떻게 보여주느냐, 즉 어떤 형태의 '전시'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노순택의 사진/텍스트는 일간지 기사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노순택의 사진/텍스트는 단지 노순택 개인전에 관한 기사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문제 기사에 삽입되어 '지면'에도 '전시'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인쇄매체'에 실린 사진을 '아트'로 간주하지 않는다. 지난 연재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얼핏 보면 노순택의 사진은 보도사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사진은 '보도사진'의 '탈'을 쓰고 기존 보도사진을 해체시키는 것으로 적어도 필자에게 보였다."

필자는 바로 그 점을 논의하기 위해 노순택의 몇 사진/텍스트를 구체적인 사례로 들어보았다. 언론에 '전시'되는 노순택의 사진/텍스트는 '경직된' 기사를 확장시키는 것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럼 노순택은 자신의 사진을 '지면'을 통해 '전시'함으로써 운동가로서의 노순택과 사진가로서의 노순택을 밀착시키는 실천의 방향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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