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3.8 세계여성의 날인 8일 서울 명동 거리에서 미투운동 동참을 뜻하는 검정색, 보라색 의상을 입은 한국YWCA 연합회원들이 미투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피켓을 들고 있다./뉴시스

어딜 가나 '미투 운동'이 화제다. 글과 말이 넘쳐나고 몸담고 있는 대학이 이 일로 전국적으로 알려진 터라 무거운 마음이 들어 이 주제를 굳이 다루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유명인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담고 싶은 마음에 그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며칠 전 참석한 회의 자리에서도 이 주제는 비켜가지 않았다. 마침 그날은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문제가 보도된 다음 날이었기에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여러 이야기 중 여성운동가 한 분의 이야기에 매우 공감했다. "유명한 정치가, 영화배우 등의 문제만이 아닌데 사회가 너무 이것만 다루는 것 같아요. 우리 주변에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요. 어딘가에서 경비원 아저씨들이 같이 일하는 청소아주머니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일삼는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이런 약자들은 목소리를 낼 수가 없는 거예요. 사회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해요" 유명한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사회적 이슈가 제기된 후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것은 우리 몫이다. 유명인이든 아니든 사회가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앞으로도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건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17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니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 여성 44.1%, 남성 54.4%, '여자들이 조심하면 성폭력은 줄일 수 있다' 여성 42%, 남성 55.2%로 나타났다. 또 다른 문항에서 '여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면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여성 40.1%, 남성 47.7%, '여자가 키스나 애무를 허용하는 것은 성관계를 허용하는 뜻이다' 여성 33.4%, 남성 48.2%, '성폭력은 주로 젊은 여자들에게서 일어난다' 여성 36.3%, 남성 43.6%, '여자가 처음 만난 남자의 집에 가는 것은 성관계를 허락한다는 뜻이다' 여성 32.1%, 남성 42.5%로 나타나 성별 간 응답차이가 발생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서 성폭력 책임여부와 관련해 여성들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비율이 생각보다 높아서 놀랐다. 그래서 여성들은 피해를 당하고도 스스로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자책을 하며 또 다른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 그동안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었나보다. 물론, 성폭력은 여성에 의해 남성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 대부분의 폭력은 힘을 가진 남성으로부터 약자인 여성에게 일어나는 권력형 범죄라는 현실을 볼 때 조사결과의 성폭력 인식차이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대학 교양시간 처음 '젠더(Gender)'의 개념을 접하고 당시 '성'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전에서 설명하는 젠더와 섹스는 우리말로 '성'이라는 같은 뜻이지만, 영어로는 미묘한 어감차이가 있다. 젠더는 사회적인 의미의 성이고, 섹스는 생물학적인 의미의 성을 뜻한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다수 국가가 주장하는 젠더는 남녀차별적인 섹스보다 대등한 남녀 간의 관계를 내포하며 평등에 있어서도 모든 사회적인 동등함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잠자던 젠더감수성이 깨어난 순간 혹시 내가 작은 힘이라도 가졌던 시절 누군가에게 가해자는 아니었는지 되돌아보았다. 소통 방식을 바꿔야겠다. 남녀를 불문하고 외모에 대한 칭찬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버릇도 고치고. 사회가 깨어나기 시작한 것 같긴 한데 예방차원이라며 회식자리에서 여성 직원을 일부러 배제하거나 말실수가 염려되어 메신저로 소통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인간과 인간의 소통이어야지 생물학적 성별이 소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크게 깨닫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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