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 클립아트코리아

뇌물(賂物).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을 매수한 뒤 사사로운 일에 이용하기 위해 넌지시 건네는 부정한 돈이나 물건이다. 속된 말로 '잘 봐 달라'고 은밀하게 주는 부정한 재화다. 지난 2006년 11월 중국 고고학계와 언론계의 관심을 끈 일이 발생했다. 뇌물과 관련된 유물이 중국 협서(陜西)성 부풍(扶風)현에서 출토됐기 때문이었다. 서주(西周:BC1200~BC 771년)의 유물이었다. 농민들이 도랑을 수리하던 중 100여 점의 청동기 유물이 발굴됐다. 이 가운데 술을 마시는 유물로 추정되는 2개 그릇에 새긴 글자 111자 고고학자와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당시 언론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머리기사는 '중국 최초 뇌물사건.'이었다. 대서특필의 사연은 이렇다. 때는 기원전873년. 귀족 주생(周生)이 사전(私田)을 개발하고 노비를 지나치게 거느리다 국법을 위반, 검거돼 처벌을 받게 됐다. 주생은 사법 관리인으로 파견된 소공(召公:무왕의 동생이자 문왕의 아들)의 부모에게 청동 단지와 옥홀(玉笏:옥으로 만든 관리들의 휴대품)을 각각 보냈다. '잘 봐 달라'는 간곡한 청이 담긴 물건이었다. 소공은 주생을 불러 '일이 잘 처리됐다'고 전했다. 주생은 답례로 소공에게 옥홀을 보냈다. 주생은 옥홀을 준 사실을 낱낱이 그릇 2개에 새겨 넣었다. 옥홀은 뇌물이었다.그래서 언론들은 '중국 최초 뇌물 사건'이라 제목을 붙였다. 뇌물 준 흔적을 술그릇에 남겨 놓은 이유는 뇌물의 약발을 확실히 받기 위함이었다. 지금이나 예나 뇌물 공여자가 증거 남기는 마찬가지다.

중국 명나라에선 '뇌물의 난'까지 발생했다. 1501년 황제가 사치와 향락에 빠진 틈을 타 환관들이 매관매직으로 엄청난 뇌물을 받았다. 당시 유근(劉瑾)이란 환관이 받은 뇌물 액수는 당시 국가수입의 수배에 달했다. 유육(劉六)과 유칠(劉七) 형제가 난을 일으켜 뇌물수수 자들을 처단하려 했지만 7년 동안 격전 끝에 오히려 진압됐다. 명나라의 뇌물 성행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누루하치에 의해 후금(後金)이 들어섰지만 뇌물 성행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급기야 홍타이지(누루하치 아들, 태종)는 '후금'에서 '맑을 청(淸)'으로 바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청나라'는 '뇌물이 없는 맑은 나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고려 명종 때다. 뇌물이 없어 벼슬길이 막혔다던 이규보(李奎報)가 '주뢰설(舟賂說)'이란 말을 남겼다. 옆 배는 잘 나아갔지만 그가 탄 배는 느리게 갔다. 이유를 묻자 사공은 '저쪽 배에는 술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승선에도 뇌물이 필요한데, 관직에야 말해 무엇 하랴.'라며 세상을 개탄한 것에서 '주뢰설'이 유래됐다. 일종의 급행료의 전신이다.

조선시대에 장오죄(贓汚罪:더러움을 숨기는 죄)가 있었다. 관의 재물을 부정으로 축내거나 뇌물을 받아 챙긴 죄다. 장오 죄인은 영영 벼슬자리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두었다. 혼삿길도 막았다. 역모 다음으로 대죄였다. 전과자 기록부인 '장오인녹안(贓汚人錄案)'를 만들어 영구 보존했다. 연좌제의 근거가 됐다. 1426년 병조판서 조말생(趙末生)은 노비 24명을 받아 유배됐다. 장오죄는 툭하면 사면령으로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요즘처럼 말이다.

지난 2016년 9월 김영란법이 시행됐다. 공직, 언론사, 사립학교 등의 직원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 원(연간 300만 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 처벌하도록 하는 법률이다. 공직사회와 언론계 등의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조치이다. 사실 법의 가짓수만 늘었을 뿐이다.?잘 지켜지고 있는가 의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받은 뇌물은 110억 원, 박근혜 전 대통령은 300억 원에 이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2,205억 원,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보다 많은 2,688억 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경우 검찰은 뇌물 액을 640만 달러(77억 정도)로 밝혔다. 장오죄를 적용하면 모두 사형이다. 전 전 대통령은 사형에서 사면됐다.세계에서 사면 잘 하는 나라를 치자면 우리나라 안 빠진다. 법이 뭔 소용이 있는가?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지난해 우리 부패인식지수가 조사대상국 180국 가운데 51위이고, 100점 만점에 54점(낮을수록 부패가 심함)이다. 뇌물공여지수는 10점 만점에 5,83점(높을수록 청렴함)이다. 분명 청렴한 나라는 아니다. 보람차게 김영란법까지 제정했는데도 말이다. 떡값이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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