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제천지역 만세운동 들여다보기
[3·1운동 100주년] 제천지역 만세운동 들여다보기
  • 서병철 기자
  • 승인 2019.02.26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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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투사 이범우 등 의병 활약
日 기관 파괴·경찰주재소 습격
뜻 기려 추모·기념비 등 설치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1842~1915)이 의병창의를 처음 일으켰던 '자양서사(紫陽書社)'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1842~1915)이 의병창의를 처음 일으켰던 '자양서사(紫陽書社)'

[중부매일 서병철 기자] 제천은 '충절의 고장', '의병의 고장'으로 이름나 있다.

지금도 박달재 아래 봉양읍 공전리 마을에는 구한말 쓰러져 가는 나라를 바라보며, 한 목숨 바쳐 풍운을 막아 보고자 의병들이 분연히 일어섰던 곳인 '자양서사(紫陽書社)'가 있다.

이 곳은 조선말기 유학자인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1832∼1893)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889년 처음 세운 서당이다.

1895년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1842~1915)이 전국 8도 유림 600여명을 모아 의병을 일으킬 것을 발의해 전국적으로 의병창의를 처음 일으켰던 곳이다.

유인석 선생을 의병장으로 추대한 제천의병은 충주와 제천을 넘나들며 일제에 항거했고, 이 항거가 시발점이 되어 훗날 무장독립군 창설 및 3·1운동의 모태가 됐다.

애국지사 이범우 선생 추모비
애국지사 이범우 선생 추모비

제천시 모산동 의림지 호숫가에는 항일투사 이범우(李範雨:1892~1969)의 추모비가 세월의 흔적 속에 색이 바래가고 있다.

그는 1919년 제천군 대표로 고종의 인산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갔다 민족 대표 33인 중 한사람인 최린의 권유로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독립선언서를 받아 귀향하는 길에 횡성의 한영고, 원주의 이영호 등에게 3·1운동을 권유했고, 제천에 돌아와 후배 장두성, 차은성 등을 단양과 영월에 보내 거사도 지시했다.

제천에서는 이기하, 권종필, 전필현 등을 만나 1919년 4월 17일 제천 장날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만세운동을 준비하는 도중 태극기 제작을 담당한 장용근 등 12명은 일본군에 검거됐지만, 그럼에도 계속 만세운동을 벌여 장날 당일 약 1천여명의 군중이 시위에 가담했다.

이범우는 후배인 부명보통학교 학생들을 동원, 선두에 서서 행진하다 붙잡혀 청주지방법원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광복 후에는 제천 의림지에 영호정을 중수했으며, 현재 의림지 호숫가에는 이범우 선생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이범우 이외에도 제천 출신의 항일독립운동가인 백광운·정호섭·서상무·안준흥·전재규 등 4투사를 기념하는 건립비가 있다.

공전리 자양영당 인근 제천의병전시관 '제천의병의 흔적'에는 이들 5명의 독립운동가들의 당시 활약상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제천 덕산면 출신인 백광운은 본명이 채찬(蔡燦)으로, 1905년 왜적과 싸우다 만주로 망명, 통화현(通化縣) 신흥무관 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백서농장을 경영하면서 둔전제를 실시하며 독립군을 양성했다.

3·1운동 후 서로군정서에 가입 후 동지들과 국내에 잠입하여 일본기관 파괴, 경찰주재소도 습격하고, 1921년에는 의용결사대를 조직한 뒤 중대장이 됐다.

1923년 임시정부 소속 육군주만참의부에 소속돼 일본 총독 사이또를 습격하는 등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치다 일본 앞잡이에 의해 살해됐다.

정호섭은 덕산면 도기리 출신으로, 소년시절 만주로 이주해 스무두살이던 1914년 7월 북간도 연길현에 참모부를 설치하고 항일운동을 펼쳤다.

덕산면 선고리 출생인 서상무는 벼슬이 승지에 이르렀지만, 1895년 유인석 선생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의병장 유인석


고종 34년 8월 칙유상관이 됐지만, 부관 김연식과 만주로 건너가 유인석 의병장과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안준홍은 덕산면 선고리에 거주하다 1907년 이강년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이후 의병을 양성하는 교관으로 독립운동을 위해 큰 활약상을 보였다.

덕산면 신현리 출생인 전재규 역시 참봉벼슬을 지내다 1896년 충주, 단양전투에 참전했다 체포돼 일생을 마쳤다.

독립운동가 황학수
독립운동가 황학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인 황학수(黃學秀:1879~1953)도 제천 출신이다.

황학수는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 부위로 근무하던 중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귀향하여 동명학교를 설립해 후진 양성에 전념했다.

3.1 운동 이후 상하이로 망명한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 후 국내 조사원에 임명돼 제천지방의 조사를 담당했다.

1920년 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입법기관인 임시의정원 충청도 의원에 선출됐다.

이 같이 전국 의병창의를 발의하며, 항일독립운동가들의 눈부신 활약상으로 미뤄 제천지역이 명실공히 '의병의 고장'임을 입증하는 셈이다.

한편 의병의 고장 제천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내달 1일 오후 2시 시민회관 광장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재현한다.

제천문화원(원장 이해권)은 '그날의 함성을 기억합니다'를 주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만세를 부르며 '한국의 독립의사를 세계 만방에 알린 그날!'을 재현하는 행사를 갖는다.

'류관순 만세 참여단'은 이날 차를 타고 시내 전 지역을 돌며 만세 시위의 포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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