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건국 전설 깃든 전북 '물뿌랭이 마을'서 금강 1천리 물길 시작
금강 발원지부터 하구까지 답사…각 고장의 다양한 이야기 소개

편집자

1천리 여정을 시작하며…

금강은 유별나다. 한반도에서 여섯 번째, 남한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지만 시작점과 종점이 같은 도(道)에 위치한 남다른 강이다. 전북특별자치도에서 시작해 약 400km를 굽이치다 다시 전북특별자치도로 되돌아간다. 1천리를 흐르는 동안 17개 지방자치단체 영역(본류 기준)을 거친다.
2개의 다목적댐(대청댐, 용담댐)이 들어선 가운데 상류 쪽 용담댐에서는 도수터널을 통해 하천수의 절반가량을 금남정맥 너머 만경강 유역으로 보내고 있다. 그래서 "금강은 하구가 2개"라는 주장도 불거진다. 유유히 굽이치는 모습이 비단결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금강(錦江)은 호남 북부권과 충청권을 대표하는 젖줄로서 지역민의 애환과 기쁨을 품은 채 도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중부매일은 창간 34주년 특별기획으로 '발로 쓰는 금강별곡(錦江別曲)'을 연재한다. 금강 발원지부터 시작해 서해로 흘러드는 하구까지 전 구간을 답사하면서 각 고장의 별난 이야기를 발굴, 소개함으로써 금강의 얼과 혼을 오늘에 맞게 살필 계획이다.
2025년 1월까지 12개월에 걸쳐 매주 금요일자 지면을 통해 독자들을 만난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당부드린다.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가 금강 발원지가 있는 신무산 정상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건너편 산줄기가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갈라져 나와 장안산~신무산~팔공산~마이산을 지나 주화산까지 이어지는 금남호남정맥이다. /김성식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가 금강 발원지가 있는 신무산 정상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건너편 산줄기가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갈라져 나와 장안산~신무산~팔공산~마이산을 지나 주화산까지 이어지는 금남호남정맥이다. /김성식

 

금강의 시작 '물뿌랭이'

뜬봉샘에서 발원한 물이 신무산 계곡을 흘러내리면서 금강 물줄기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 물줄기는 물뿌랭이 마을인 수분리 앞에서 곧바로 북쪽을 향해 줄달음친다. /김성식
뜬봉샘에서 발원한 물이 신무산 계곡을 흘러내리면서 금강 물줄기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 물줄기는 물뿌랭이 마을인 수분리 앞에서 곧바로 북쪽을 향해 줄달음친다. /김성식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금강 물줄기가 발원지에서 시작하듯이 '발로 쓰는 금강별곡'도 발원지에서 첫 운을 뗀다. 발원지는 물줄기의 시작점이다. 물머리를 처음으로 일으켜 세워 흐름을 시작하는 의미 있는 지점이다.

발원지는 물의 근원, 물의 뿌리이기도 하다. 금강 발원지가 있는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의 별칭은 물뿌랭이다. 물뿌랭이는 물뿌리의 사투리다. 주민들이 스스로 부르는 마을 이름이 물뿌랭이다. 금강의 뿌리가 이 마을이란 뜻에서다. 주민들의 자부심이 서려 있다.

수분리(水分里)는 물을 나누는 첫 동네란 뜻을 담고 있다. 마을 옆에 수분령(수분치)이 있는데 북쪽 장수 방면의 물은 금강으로, 남쪽 남원 방면의 물은 섬진강으로 나눈다. 물이 나뉜다는 것은 각각의 물이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금강의 정확한 발원지는 수분리 뒷산 8부 능선의 뜬봉샘이다. 790m 높이에 있는 뜬봉샘은 현재 돌로 쌓은 옹달샘 모습을 하고 있다. 34년 전(1990년 2월) 기자가 처음 찾았을 때와는 딴판이다. 예전엔 흙으로 된 자그마한 옹달샘이었는데 격세지감이 절로 느껴진다.

뜬봉샘이 있는 신무산은 산 자체로는 그저 평범한 산이다. 높이는 897m이나 장수군의 평균 해발고도가 430m의 고원지대여서 실제 산 높이는 400m급이다. 인근에는 팔공산(1151m), 장안산(1237m) 등 유명한 산봉우리들이 연이어 솟아 있어 등산인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것도 아니다. 또한 바위가 거의 없는 흙산이기에 특별한 볼거리라든가 유명한 등산코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여느 마을의 뒷산 같은 산이다. 이런 신무산이 주목받는 이유는 품 안에 금강 발원지, 물뿌랭이가 있기 때문이다. 신무산(神舞山)은 한국지명총람에 신선이 춤을 추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전한다.
 

이성계가 신무산을 찾은 이유

금강 발원지인 뜬봉샘의 겨울 전경. 뜬봉샘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올린 후 천지신명으로부터 새 나라를 열라는 계시를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김성식
금강 발원지인 뜬봉샘의 겨울 전경. 뜬봉샘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올린 후 천지신명으로부터 새 나라를 열라는 계시를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김성식

평범 속에 비범이 있다고 했던가. 평범한 산, 여느 마을 뒷산 같은 신무산에 엄청난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이성계와 조선 개국에 얽힌 이야기다.

장수군지에 의하면 이성계가 나라를 얻기 위해 천지신명으로부터 계시를 받으려고 전국 명산을 찾아다니던 때의 일이다. 이성계가 신무산 중턱에 단을 쌓고 백일기도를 올리자 백일째 되던 날 새벽 단에서 조금 떨어진 골짜기에서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떠오르더니 봉황새가 그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늘로부터 빛을 타고 아련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성계가 정신을 가다듬고 들어보니 "새 나라를 열라"는 천지신명의 계시였다.

이성계는 천지신명의 계시를 들은 단 옆에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는 의미로 상이암(上耳庵)이란 암자를 짓고 봉황이 뜬 곳의 샘물로 하늘에 제를 올렸다 한다. 이후 봉황이 떠오른 샘을 뜬봉샘이라고 부르게 됐는데 그 샘이 바로 금강 발원지다. 오늘날 상이암은 전설로만 남아있다.

이성계는 신무산을 왜 찾았을까. 내로라할 명산도 아닌데 왜 이곳을 찾아 단을 쌓고 백일기도를 올렸을까. 조심스럽게 생각건대, 새 물줄기의 시작점인 물뿌랭이의 중요성과 함께 발원 후 유독 북쪽을 향해 내달리는 금강 물줄기의 속성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국내에는 금강보다도 더 큰 강이 다섯 개나 있고 그 강들도 각각 발원지를 갖고 있지만 발원한 물이 금강처럼 곧바로 임금이 있는 곳을 향하진 않는다. 다시 말해 금강은 발원하자마자 물줄기가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거슬러 흐른다는 얘기다. 여기서 이성계의 본심을 읽을 수 있다. 이성계가 이곳 신무산을 찾았을 땐 이미 새 나라에 대한 의지를 굳힌 상태였을 테고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음으로써 자신감을 얻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금강은 실제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뜬봉샘에서 발원해 수분리 마을 앞에서 서둘러 물머리를 북쪽으로 튼 다음 장수읍을 거쳐 진안 용담호로 흘러든다. 이후 무주~금산~영동~옥천~보은을 거치는 동안에도 줄곧 북진해 대청호에서 몸을 푼 후 대전광역시와 청주시 관내에서 비로소 서쪽을 향한다.

 

신무산에 얽힌 다른 유래와 기록들

금남호남정맥의 신무산 정상에 세워져 있는 안내표지판. 신무산의 유래와 함께 뜬봉샘의 위치를 소개하고 있다. /김성식
금남호남정맥의 신무산 정상에 세워져 있는 안내표지판. 신무산의 유래와 함께 뜬봉샘의 위치를 소개하고 있다. /김성식

34년 전 기자가 처음으로 수분리를 찾았을 때 마을 이장이던 신현숙씨(당시 나이 50)가 들려준 신무산의 유래는 이러했다. 옛날부터 신무산을 뜸봉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신무산의 정기와 혈을 끊기 위해 오랑캐들이 온통 불을 질러 뜸을 떴다 하여 그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신씨는 당시만 해도 뜸봉에서 묫자리를 파다 보면 새까만 숯이 나왔다고 했다. 뜸봉의 남쪽 자락에 있는 장군목(일명 장구목)도 명나라 이여송이가 장군이 나올 명당자리라 해서 혈을 끊은 곳이라고 신씨는 덧붙였다.

마을에 전해오는 또 다른 이야기로는 신무산에 장군대좌혈이란 명당이 있어 역적이 날까 두려워 그 자리를 뜸 뜨듯 숯불을 놓아 기운을 다스렸기에 뜸봉이라 불렀다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주민들이 마을의 재앙을 막고 풍년과 무탈을 기원하기 위해 신무산에 올라 뜸을 뜨듯이 봉화를 올렸기에 뜸봉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현재 뜬봉샘을 오르는 탐방로에는 봉수대가 한 기 재현돼 있다. 이렇듯 신무산은 뜸과 관련된 이야기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하지만 뜸봉이란 말은 점차 사라지고 지금은 뜬봉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금강 발원지에 관한 기록들

금강 발원지에 관한 기록은 여러 문헌과 고지도에 나타나 있다. 조선 중종 때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골짜기의 물이 하나는 남원으로 향하고 한 줄기는 장수현으로 들어와 남천이 되므로 수분현(水分峴)으로 이름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 후기 철종 연간에 김정호가 만든 동여도에는 장수 수분치 일대가 금강이 시작되는 지역이란 의미의 금강지원(錦江之原)으로 표기가 돼 있다. 조선 후기 문신 이유원의 임하필기에는 금강의 근원이 장수의 수분치에서 나온다(錦江源出長水之水分峙)고 기록돼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금강의 발원지가 장수 신무산 수분이 고개로 표기돼 있으며 한국지명요람, 큰사전(한글학회), 새한글사전(〃)에는 전북 장수군으로 표기돼 있다.

이에 비해 택리지는 덕유산과 마이산 사이, 성호사설은 덕유산, 대동지지는 마이산 동봉(東峰)에서 금강이 시작한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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