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에 발원지 뺏긴 금강… 본래 신무산 남동사면서 '뜬봉샘' 바뀌어

전북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앞에서 수분치와 신무산을 바라본 전경. 신무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모두 오른쪽의 금강수계로 흐를 것 같지만 분홍색 화살표처럼 신무산 남동사면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수분치 부근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섬진강수계로 흘러간다./김성식
전북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앞에서 수분치와 신무산을 바라본 전경. 신무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모두 오른쪽의 금강수계로 흐를 것 같지만 분홍색 화살표처럼 신무산 남동사면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수분치 부근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섬진강수계로 흘러간다./김성식

◇현재의 수분치는 '사실상 가짜 분수령'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물길 간의 다툼으로 본래의 물길을 다른 하천에게 빼앗긴 사례가 있다. 금강 발원지와 관련된 이야기다.

금강이 발원하는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신무산에 가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수분리 앞 19번 국도에서 신무산 쪽을 바라보면 지형상 신무산에서 발원한 물은 모두 수분리 앞에서 만나 오른쪽(북쪽)으로 흐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현재 신무산에서는 두 물줄기가 발원한다. 뜬봉샘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강태등골이란 골짜기를 지나 마을 앞에서 북쪽으로 흐르면서 금강수계(수분천)를 이룬다. 이에 반해 신무산 남동사면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같은 사면의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린 뒤 수분리 옆 수분치(수분령) 부근에서 남쪽으로 급선회해 섬진강수계(교동천)를 이룬다. 두 물줄기는 아예 정반대로 흐른다.<사진 참조>

본래 금강수계였던 두 물줄기가 '하천쟁탈'이라는 급격한 지형변화를 거치면서 하나는 본래의 방향인 북쪽을 향해, 다른 하나는 반대 방향인 남쪽을 향해 흐르는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결과 본래 신무산 남동사면(현재 발원샘이 없음)에 위치하던 금강 발원지가 현재의 뜬봉샘으로 바뀌게 됐고 물길의 길이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이런 사실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지난 2012년 19번 국도 4차선 확장공사 때 수분치 아래에 묻힌 암거배수로 영향이 크다. 금강수계였다가 섬진강수계로 편입된 교동천 상류부가 수분치 부근에서 이 암거배수로를 통해 땅속 깊숙이 묻힌 채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수분치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19번 국도. 장수 쪽에서 수분치 고갯마루를 오르기 전에 섬진강 교동천 상류가 화살표 지점에서 암거배수로를 통해 19번 국도를 지나기 때문에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김성식
수분치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19번 국도. 장수 쪽에서 수분치 고갯마루를 오르기 전에 섬진강 교동천 상류가 화살표 지점에서 암거배수로를 통해 19번 국도를 지나기 때문에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김성식

현재의 수분치는 실제로는 섬진강수계에 위치한 인공적인 분수령일 뿐이다. 교동천 상류는 장수 방면에서 수분치 고갯마루를 오르기 전 지점에서 이미 암거배수로를 통해 19번 국도를 가로지른다. 따라서 수분치 고갯마루는 사실상 섬진강수계에 위치하면서 '가짜 분수령 역할'을 한다.<사진 참조>

◇물길 간의 치열한 다툼 '하천쟁탈'

수분치(청색점)에서의 하천쟁탈 설명도(출처: 손일 박사 논문). 녹색 화살표는 하천쟁탈 이전의 물흐름 방향, 주황색 점선은 하천쟁탈 이전의 분수계, A지점은 쟁탈 팔꿈치./김성식
수분치(청색점)에서의 하천쟁탈 설명도(출처: 손일 박사 논문). 녹색 화살표는 하천쟁탈 이전의 물흐름 방향, 주황색 점선은 하천쟁탈 이전의 분수계, A지점은 쟁탈 팔꿈치./김성식

하천쟁탈(stream capture)은 침식력이 큰 하천의 상류부가 다른 하천의 일부를 빼앗는 현상을 말한다. 손일 박사(부산대학교 명예교수)는 2014년 대한지리학회지에 발표한 '전북 장수군 수분치의 하천쟁탈에 관한 연구'를 통해 "수분치에서의 하천쟁탈은 섬진강의 지류인 교동천이 지질구조선을 따라 상류로 두부침식을 진행하면서 금강과 섬진강의 능선 분수계를 무너뜨리고 장수 쪽으로 들어와 수분 분지를 흘러가던 금강의 최상류 하천(수분천)을 쟁탈한 결과"라며 하천쟁탈을 설명했다.

손 박사는 수분치의 하천쟁탈 증거로 우선 elbow of capture을 들었다. elbow of capture는 '쟁탈 팔꿈치'로 해석되는데 하천쟁탈이 이뤄진 지점에서는 팔꿈치처럼 급격히 굽은 지형을 만들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수분치의 경우 수분령휴게소 부근이 이에 해당한다. 북북동 방향으로 계곡을 따라 두부침식해 오던 교동천이 수분령휴게소 부근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19번 국도를 암거배수로를 통해 지난 후 신무산의 능선 방향으로 급선회하는 지역이 바로 쟁탈 팔꿈치 부분이다.

손 박사는 또 다른 증거로 풍극을 들었다. 풍극은 하천쟁탈의 흔적이다. 금강수계의 수분천 유로가 섬진강수계의 교동천에 의해 쟁탈당하면서 기존의 유로에는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는 풍극 구간이 형성됐다. 손 박사는 풍극으로 추정되는 구간은 약 200m에 이르지만 현재 이 구간은 농경지로 이용되거나 시설물이 들어서 있어 특별한 지형학적 증거는 찾기 어렵다고 했다.

◇지금도 진행 중인 하천쟁탈

수분치 부근의 하천쟁탈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두부침식에 의한 도로와 농경지 피해를 막기 위해 콘크리트 옹벽 등 다양한 대응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하천쟁탈 활동은 여전히 활발하다.

'하천쟁탈의 승리자' 격인 섬진강수계의 교동천 특성 때문이다. 교동천은 하천쟁탈 이전부터 하천바닥이 금강수계의 수분천 보다 낮았다. 따라서 하천쟁탈 이후에도 하천바닥이 낮은 교동천의 특성상 두부침식력이 클 수밖에 없다. 교동천의 두부침식력이 줄어들지 않는 한 인근의 금강수계에 대한 하천쟁탈 활동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손 박사는 이 같은 지형학적 특수성을 들어 지오투어리즘(Geo-tourism)의 최적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천쟁탈의 지형학적 프로세스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수분치는 주변의 뜬봉샘과 함께 지리교육뿐만 아니라 지오투어리즘의 좋은 사이트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오투어리즘은 천연의 지질자원을 관광상품으로 활용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관광정책의 하나다.

◇하천쟁탈과 물 부족 현상

신무산 남동사면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섬진강 교동천 상류). 주민들이 물을 끌어 쓴 흔적이 보인다./김성식
신무산 남동사면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섬진강 교동천 상류). 주민들이 물을 끌어 쓴 흔적이 보인다./김성식

하천쟁탈이 일어난 신무산 남동사면 일대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하천쟁탈 후 심해진 것으로 추정되는 물 부족난과 그에 따른 물 전쟁이다.

하천쟁탈이 일어나면 유로가 바뀌어 과거 물이 흐르던 지역에 물이 흐르지 않는 풍극 구간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또 하천바닥이 낮은 하천으로 하천바닥이 높은 하천이 쟁탈당하기 때문에 하천쟁탈이 이뤄지기 전의 물흐름보다 하천쟁탈 후의 물흐름이 더욱 빨라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하천쟁탈이 일어난 지역에서는 과거보다 물부족 현상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수분리 주민들에게 물어봤더니 추측이 맞았다. 언제부턴지는 몰라도 물 부족이 심하다고 했다. 교동천 물줄기를 끌어다 쓰지 않고는 농사를 못 지을 정도로 물이 귀하단다.

현재 신무산 뜬봉샘에서 발원한 물줄기(수분천)보다 신무산 남동사면에서 발원한 물줄기(교동천)의 수량이 훨씬 더 많다. 갈수기인 2월에도 확연히 차이가 났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은 많은데 주민들은 물 부족을 겪는다. 하천쟁탈이 가져온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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