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류서 만나는 금강의 얼… 빛나는 충·의·기개

전북 장수의 논개사당 의암사. 금강이 발원하는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임진왜란 때 진주성 촉석루에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주논개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주논개는 장수삼절로 추앙받는다./김성식
전북 장수의 논개사당 의암사. 금강이 발원하는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임진왜란 때 진주성 촉석루에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주논개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주논개는 장수삼절로 추앙받는다./김성식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예부터 팔도를 나눌 때 산이나 물을 기준으로 하여 경계를 나눴다. 그럼에도 마치 지역 인성이나 기질을 보고 나눈 것처럼 각 지역 인성과 기질이 서로 다름에 혀가 내둘러진다.

판소리 춘향가에도 이런 대목이 있다. 경상도 산세는 산이 웅장하므로 사람이 나면 정직하고 전라도 산세는 산이 촉하기로 사람이 나면 재조 있고 충청도 산세는 산이 순순하기로 사람이 나면 인정 있다…. 판소리 대목이지만 산세를 가지고 각 지역 사람들의 인성과 기질을 평한 게 흥미롭다. 자연환경이 사람의 인성과 기질을 낳는다는 말이 있는데 같은 맥락이리라.

전북 땅에서 발원해 호남 북부권과 충청권을 아우르며 1천리 물길을 이루는 금강은 지역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금강이 남긴 인성과 기질은 무엇일까. 금강이 품고 있는 정신적 줏대 즉, 금강의 얼은 무엇일까.

금강이 품은 얼의 일면을 최상류인 전북 장수에서 마주한다. 장수사람들이 서민영웅으로 받드는 장수삼절이 그것으로, 금강이 지닌 대표적인 정신적 줏대로 여겨진다.
 

거룩한 분노 '충절의 화신 주논개'

주논개의 표준 영정.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낀 것은 왜장을 껴안았을 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김성식
주논개의 표준 영정.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낀 것은 왜장을 껴안았을 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김성식

전북 장수(長水)는 말 그대로 물이 긴 고장이다. 물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물이 많음을 의미한다. 산이 많고 험한 까닭이다. 금강 물줄기가 시작하는 장수 땅에서 장수삼절의 한 명인 논개의 곧은 정신을 만난다.

의암 논개는 신안 주씨로 아버지는 훈장인 주달문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다.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에서 4갑술(갑술년, 갑술월, 갑술일, 갑술시)의 특이 사주를 타고 태어났다. 논개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면서 의지할 곳 없게 되자 장수현감인 최경회에 의탁하게 됐다가 그 인연으로 17세에 최경회의 부실이 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경회는 의병장이 됐고 논개는 그의 뒷바라지에 나섰다. 최경회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돼 진주성에서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스스로 책임지고 남강에 투신했다. 논개는 비장한 결심을 했다. 적장을 죽이기 위해 기생으로 변장한 후 왜군의 연회장으로 들어가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했다. 그의 나이 19세였다.

시인 변영로는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고 논개를 치켜세웠다. 장수 사람들은 장수를 '논개골', 논개를 '논개님'으로 칭한다. 논개 생가지를 정비하고 논개사당인 의암사를 건립해 영정을 모신다. 표준 영정은 논개의 문중인 장수지역 신안 주씨 여인들의 용모 유전인자를 바탕으로 그렸다고 한다. 논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역과 학교에서는 해마다 연등제와 연극, 공연, 제례, 축제 등을 열고 있다. 금강의 물결에 논개 정신이 빛나고 있다.

 

왜장도 감복한 '충복 정경손의 기개'

장수향교 안의 장수삼절. 정충복비를 모신 비각 옆에 '본성역물범(本聖域勿氾)'이란 문구(원내)가 붙어 있다./김성식
장수향교 안의 장수삼절. 정충복비를 모신 비각 옆에 '본성역물범(本聖域勿氾)'이란 문구(원내)가 붙어 있다./김성식

전북 장수의 장수향교에는 특별한 건축물이 있다. 대한민국 보물인 대성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 건물로서 조선 향교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 태종 7년(1407)에 건립된 장수향교[숙종 12년(1686)에 현 위치로 이전] 대성전이 원형을 유지하며 600여년을 견뎌온 데는 충복(忠僕) 정경손이라는 장수 출신의 서민영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경손은 장수사람들이 성인으로 추앙하는 장수삼절 중 한 명이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으로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됐을 때의 일이다. 유서 깊은 향교들이 모두 불타 사라지는 긴박한 상황에서 장수향교 역시 풍전등화였다. 모두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 때 향교 노복이었던 정경손은 왜군이 침범하자 "이곳은 성인들의 위패를 모신 신성한 곳이니 들어가려면 내 목을 베고 들어가라"고 맞섰다. 이에 감복한 왜장은 '본성역물범(本聖域勿氾)'이란 신표를 향교 입구에 붙이곤 물러갔다. 이곳은 성스러운 곳이니 침범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장수향교에는 현재 다른 향교에서는 볼 수 없는 비각과 눈에 띄는 문구가 붙어 있다. 정충복비를 모신 비각이 있고 바로 옆에 '본성역물범(本聖域勿氾)'이란 문구가 서릿발처럼 붙어 있다. 장수 유림은 해마다 음력 3월 15일 제를 지내 그를 기린다.
 

투철한 사명감 '순의리 백씨'

장수삼절의 타루각과 타루애. 타루각에는 순의리 백씨의 충절을 기리는 장수리순의비와 타루비(원내)가 있고 순절 현장인 타루애에는 말과 꿩 조각상이 있다./김성식
장수삼절의 타루각과 타루애. 타루각에는 순의리 백씨의 충절을 기리는 장수리순의비와 타루비(원내)가 있고 순절 현장인 타루애에는 말과 꿩 조각상이 있다./김성식

13번 국도와 금강이 지나는 전북 장수군 천천면 장판리 앞 도롯가에는 범상치 않은 비석이 서 있다. 이름도 예사롭지 않은 타루비(墮淚碑)다. 직역하면 눈물을 흘린다는 비석이다.

조선 숙종 4년(1678년) 때 일이다. 비석의 주인공인 순의리 백씨(殉義吏 白氏)는 관아에서 행차 수행 등을 맡던 통인이었다. 백씨는 장수 현감 조정면을 수행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현감을 태운 말이 현재의 비석이 서 있는 절벽에 이르렀을 때 말발굽 소리에 놀란 꿩이 급하게 날아올랐다. 이에 놀란 말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면서 현감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백씨는 현감이 죽은 것을 자기 탓으로 돌렸다. 소임을 다하지 못한 탓이라며 '타루'라는 혈서를 바위에 남기고는 현감을 따라 죽었다. 신분은 미천했지만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책임의식, 공인으로서의 사명감은 투철했다.

백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순조 2년(1802)에는 타루비를, 고종 18년(1881)에는 장수리순의비(長水吏殉義碑)를 세웠다. 백씨가 죽은 절벽에는 '타루애(墮淚崖)'라는 글자와 함께 말과 꿩의 형상을 새긴 조각상이 있다. 장수 사람들은 백씨를 장수삼절로 추앙하며 매년 음력 3월 22일 제를 지내 그의 정신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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