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진단] 최동일/부국장겸 음성·괴산주재

최동일 음성·괴산 기자

시작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지 벌써 한달 반이 지났다. 지금의 상황만 살펴보아도 이 법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애초 우려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김영란법의 엄청난 위력이 피부에 와 닿으면 닿을수록, 이 법이 갖고 있는 문제점이 더 커 보이는 것은 우리 국민 누구나 이 법의 대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상자조차 모호한 채로 시작한 이 법이 안착되려면 무수한 판례(判例)와 함께 적지않은 혼란속에 수정이 가해져야 할 것이라는 생각은 비단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은 우리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부정적인 면 중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공직사회의 경직(硬直)이다. 그렇지않아도 짜여진 틀안에서만 움직여 유연성이 떨어지고, 새로운 변화나 시도를 외면해 탄력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온 공직사회는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한마디로 얼어붙은 조직이 돼버렸다. 업무를 비롯해 생활 전반을 규제하는 법인데다가 법안 제정의 시발점에 놓여있는 대상인 만큼 공직자들의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는 없겠지만 그 여파는 공직사회의 활력 상실로 이어졌다. 공직을 대상으로 찬바람이 불때마다 반복되는 일이었지만 공무원들의 이번 복지부동(伏地不動)은 그 어느때보다도 심각한 수준이다.

예전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을 때에도 공직사회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느긋함과 함께 사회 분위기의 변화를 기다리는 복지안동(伏地眼動)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직은 물론 공직 언저리에서도 눈동자조차 움직임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직사회에서 "소나기는 피하고 봐야 한다"는 말은 시대를 뛰어넘는 교훈(敎訓)이다. 믿을 수 있을만한 지침과 '시범케이스'가 나올 때까지는 무조건 아무 것도 하지말고 그냥 엎드려 있겠다는 분위기는 좀처럼 흐트러짐이 없다. 김영란법의 맹위도 엄청나지만 요즘 괴산군 군정(郡政)은 또 다른 한파속에 한겨울 얼어붙은 논바닥처럼 숨구멍까지 막혀있다.

김영란법이 부실한 준비로 여러가닥 규제의 끈이 매듭도 없이 방향을 잃고 얽혀버려 대한민국을 묶어버렸다면 괴산군은 무작정 길어지고 있는 군수공백이 군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해 반년 가까이 이어졌던 군수의 빈자리는 올들어서도 다시 반년이 다 돼가고 있다. 군수대행이 업무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고 하지만 능동적이고 선제적인 군정은 기대할 수 없고, 경제나 사회적 역량이 턱없이 부족한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행정력의 누수는 지역 전체의 무기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공백을 메울 대행체제가 원만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징후가 곳곳에 드러나면서 그나마 버티던 생명체들도 동면(冬眠)에 들어간 형국이다.

최근 불거진 문광면에 대한 '호국원 유치 지원' 논란은 그동안 괴산군에서 벌어졌던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군정 수행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추진력과 결단이라는 수식어 밑에 깔려있던 이런 치부(恥部)들은 언제가는 터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괴산군이 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들을 다수의 합의속에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안정이 선결돼야 한다. 새로운 추진력과 결단으로 난맥을 풀려고 해도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는 공직으로는 어림도 없다. 더구나 지금 괴산군이 처해있는 난국의 원인을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미련과 혼돈속에 빠져 있는 공무원이 있다면 '시범케이스'의 쓴맛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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