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암골 / 중부매일 DB

청주 우암산 자락에 자리 잡은 수암골은 지역의 대표적인 명소 중 한곳이다. 한때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배경이 됐던 팔봉제과와 '영광의 재인'에 등장했던 우동집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6.25전쟁 통에 울산 23육군병원 앞에 천막을 치고 살던 피난민들이 청주로 이주하면서 터를 잡았던 '달동네'이자 미로(迷路)같이 좁은 골목의 담 벽에 벽화가 그려진 과거의 추억과 문화가 담겨진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피난민들의 신산(辛酸)한 삶을 간직한 '피난민촌'은 드라마의 촬영지로 인기를 모으면서 사람들이 몰리자 지금은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중부매일 보도에 따르면 수암골은 다섯동의 상가건물이 동시다발적으로 신축공사를 하고 있다. 이곳은 이미 카페와 레스토랑등 상권이 형성됐다. 주변에는 아예 택지로 개발해놓은 곳도 있고 매물로 나온 부지도 많다. 골목안의 작고 허름한 주택중에는 상가로 리모델링 중인 곳도 있다. 수암골은 거센 변화의 바람에 직면하고 있다.

달동네를 상징하던 집들은 하나둘 모습을 감추고 있다. 관광객이 몰려들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도심의 주택가 못지않게 땅값이 올랐다.

관광객에겐 과거의 향수를 자극할지 몰라도 원주민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는 낡고 허름한 집들이 과연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그 자리에 상가가 들어선다면 수암골의 정체성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청주시는 안덕벌 도시재생사업을 비롯해 수암골과 수동 인쇄문화 거리, 김수현 드라마아트홀을 잇는 문화벨트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한범덕 전시장은 수암골에 17채의 한옥타운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 뿐이다. 청주시가 추진하는 한류명품 드라마 테마파크가 수암골을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 것이라고 기대하는 시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청주시는 "카페촌이 생겨 지역경제에는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수암골을 바라보는 청주시의 시각이 이렇다면 얄팍한 상혼이 판치는 소비지향적인 마을이 될 수밖에 없다.

경남 통영에는 '동피랑마을'이 있다. 한때 철거대상이었던 이 마을은 2007년 시민단체가 공공미술의 기치를 들고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을 열었고, 전국 미술대학 재학생과 개인 등 18개 팀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면서 지역의 명소가 됐다. 특히 동피랑마을 인근에 미술관과 시인의 생가등 각종 문화공간이 곳곳에 배치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북 전주에는 풍남동과 교동 일대에 700여 채의 한옥으로 이루어진 한옥마을 있다. 한옥생활체험관, 전통공예품전시관, 전통한방체험센터 같은 관람·체험 시설도 산재해 있고, 부채, 한지, 목공예 분야의 명인들이 살면서 교육도 하는 '명인들의 집'도 골목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은 2010년에 '한국관광의 별'로 지정된것은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이다.

수암골이 난개발과 카페촌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역사·문화적인 가치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사유지 매입을 통해 청주 전통문화가 담긴 공공시설물을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청주시는 수암골의 문화적 정체성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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