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충북 100경 - 청주육거리시장
이야기가 있는 충북 100경 - 청주육거리시장
  • 중부매일
  • 승인 2017.07.2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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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고 질긴 삶… '사람 사는 풍경'
사진 / 홍대기(사진작가)

새들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지저귄다. 새들에게 질세라 매미도 한사코 울어댄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삶을 찬미한다. 나뭇잎은 바람에 몸을 비비며 소리를 낸다. 햇살이 눈부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축 늘어져 있다. 장맛비에는 젖은 몸을 부르르 떨며 푸른 물감을 쏟아낸다. 여름엔 얼음 동동 띄어 수박화채를 해 먹고 싶다. 입안에 신맛으로 가득한 자두도 먹고 싶다. 달달한 과즙 쏟아지는 포도 한 송이는 또 어떠한가. 느티나무 정자에 앉아 새소리, 매미소리, 바람소리 벗 삼아 한유롭게 게으름 피우고 싶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을 갖는 것이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이다. 새로운 시선은 언제나 모험을 동반하게 되는데, 그 모험은 우리들의 삶 모퉁이에 존재하고 있다. 보라. 이 세상은 수많은 모퉁이로 가득하지 않던가. 더디게 가더라도 낮게 생활하고 높게 생각하는 인간의 고결함이 묻어있는 곳, 바로 재래시장이다.

낯선 여행, 낯선 도시에서 투어리스트는 망설임 없이 그곳의 골목길과 전통시장과 박물관을 어슬렁거린다. 그들이 살아온 노정이 궁금하고, 진한 땀방울로 가득한 삶의 향기가 그립기 때문이다. 사람풍경 가득한 그곳의 속살을 엿보며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고 사유와 통찰을 통해 더 큰 삶을 꿈꾼다.

사진 / 홍대기(사진작가)

육거리시장은 청주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그 역사만 해도 60년이 훌쩍 넘었다. 2일과 7일에 열리는 5일장에는 팔도의 장똘뱅이 제 다 모인다. 방물장수와 거리의 악사도 오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대장간의 풀무질은 뜨겁게 안아주던 연인의 품처럼 까만 숯덩이 끌어올려 녹 슬은 연장을 달군다. 박경리는 '거리의 악사'라는 글에서 우연히 만난 삶의 현장을 통해 예술가의 삶과 생활인의 삶 사이의 이질성과 동질성을 발견했다. 이곳이 예술가에게 창조의 최전선이라는 것이다.

육거리시장의 매력은 다양성과 깊은 풍미다. 한 때는 약전, 닭전, 고추전, 우시장 등 골목마다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들의 흥정으로 소요스러웠던 곳이다. 이 때문에 갖은양념으로 속이 꽉 찬 순대국밥집, 쫄깃쫄깃 미니족발집, 녹두전·김치전·메밀전 등을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전집, 팥죽 한 그릇으로 허기진 그리움을 달랠 수 있는 죽집, 진한 국물이 일품이 설렁탕집, 추억의 보리밥집 등 충청도의 후한 인심과 깊은 맛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115년 역사를 간직한 청주의 최고령 교회인 제일교회도 시장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사진 / 홍대기(사진작가)

흔들리는 진통이 흔들리지 않는 전통을 낳는다고 했다. 수많은 변화의 물결과 유혹에 흔들리면서도 자기만의 철학과 신념, 그리고 독창적인 비법으로 살아남은 시장 사람들은 한 편의 드라마다.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을 만들어라", "거지가 빈손으로 지나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 "내 가족이 먹지 않는 것은 만들지도 팔지도 말라", "오래 묵을수록 깊은 맛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신용이 100년 고객을 만든다", "상인간에는 경쟁이 아니라 협동과 배려로 하나 되어야 한다" 등의 상도가 있지 않았던가.

100년의 명가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속도보다 방향을 먼저 생각하고 전통을 따르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그 무엇을 위해 힘쓰고 소비자를 내 가족처럼 여긴다. 이익보다 가치를 지키고 세월의 여백을 상품속에 담는다. 늙어갈지언정 낡아가면 안되기 때문이다. 정직함과 체험과 놀이가 함께 하고 지역의 발전과 평화를 함께 고민한다. 반짝하고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100년의 명가처럼 롱런할 것인가 깊은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 / 홍대기(사진작가)
글 / 변광섭(에세이스트·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

#담지 못한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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