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조형숙 서원대학교

클립아트 코리아

올해 수학능력시험은 시험 전날 부득이하게 연기되는 바람에 전 국민이 지진의 충격 속에 수능시험을 두 번 치른 듯하다. 나 역시 예정된 일정이 줄줄이 뒤로 밀리자 대학 입시의 무게를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우리 대학의 신입생 면접도 일주일 연기되었다.

나는 집안일을 할 때는 주로 라디오를 듣는다. 지난 주말 옷이며 수건을 세탁기에 넣고 돌린 뒤, 설거지를 하면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수험생들에게 면접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주느라 전문가가 출연하여 이것저것 조언해주는 참이었다.

'이제 면접 시즌이 왔구나.' 면접은 내신관리와 수능시험을 거친 수험생이 대학에 가서 면접을 보며 최종 선택을 하는 시간인 셈이다. 라디오에 출연한 전문가가 수험생에게 강조한 조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구부정한 자세를 하지 말고 바른 자세로 허리를 쭉 펴고 앉아라. 둘째, 웅얼거리지 말고 입학사정관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을 해라. 셋째, 해당 질문에 약 2분씩만 대답을 하고 한 질문만 길게 이야기 하지 마라. 넷째,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특별히 없습니다'와 같이 '셀프 엔딩'을 하지 말고, 자신이 얼마나 합격하고 싶은지 진지한 어투로 '어필'하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하나같이 그럴싸한 조언이다. 그러나 그것은 들어나 마나한 만담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면접관으로 나온 입학사정관 혹은 교수사정관이 학생의 앉은 자세, 명료한 목소리, 2분가량 잘 안배된 답변 분량과 어필하는 어투에 매료된다면, 사정관제도를 왜 운영해야 할까? 김홍도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씨름꾼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면접을 해도 그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다.

입학사정관 제도는 2007년 처음 시행되었고, 이 제도를 대학에 정착시키기 위해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엄청난 지원금을 주고 끊임없이 컨설팅을 하고 해외 파견연수를 했고 지금은 대체로 입학사정관 전형이 정착되었다고 보는 시점이다. 그런데 전문가의 조언이라는 것이 하나같이 자세, 목소리, 시간안배, 어투와 같은 외양과 겉치레에 치중해 있다. 그럴싸한 만담이다.

과거에는 점수로 수험생을 서열화하고 점수 1점 차이로 입시의 당락이 갈라졌다. 그러나 현재 운영되고 있는 입학사정관 전형은 점수 1-2점으로 합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자질과 전공적합도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하여 고등학교 교육에 창의성을 부여하고 대학에 학생 선발을 위한 자율성을 주겠다는 것이 그 취지다. 한국의 대학이나 기업은 지원자를 선발한다고 생각하고, 지원자는 '간택'당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면접은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정보를 알려주고 서로가 서로를 평가하는 시간이다.

조형숙 서원대학교 교수

만약 평소 자세가 구부정하는 지원자가 있다면, 그는 면접에서 자신의 구부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 구부정한 자세가 대학에서 해당 전공을 수행하는데 장애가 없다면 그런 지원자를 탈락시켜서는 안 된다.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천편일률적으로 2-3분가량 안배된 답변이 아니라, 지원자의 답변을 바탕으로 다시 깊이 질문해 들어가는 탐침질문(probing question)을 통해 지원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전공적합도와 수학능력를 추정하는 사정관의 전문성이다.

라디오에 출연한 그 입시 전문가의 조언은 너무 표피적이다. 좋은 대학에서 공부했을 아나운서도 "아하 그렇군요"하면서 맞장구를 친다. 우리 사회는 매사 그럴싸하고 표피적인 것을 향해 돌진한다. 그것이 대개의 경우, 손쉽게 먹혀들기 때문이다. 지진은 포항에서 났지만, 우리 사회 전체가 그럴싸하게 흔들흔들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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