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시래기 손질하는 농민 / 뉴시스

요 며칠 참 추웠다. 갑자기 몰아친 강추위에 겹겹이 옷을 입어도 찬바람이 파고든다. 이런 날이면 뜨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마침 감기기운도 있고 해서 시래깃국을 먹었다. 몸이 많이 안 좋거나 특별히 입맛이 없을 때면 올갱이국이나 시래깃국을 먹곤 한다. 다른 국은 먹으면 질리는데 이상하게 두 가지 국은 그렇지 않다. 한번은 아내가 시래기 타령하는 내게 큰 냄비 가득 국을 끓여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매끼를 시래깃국을 먹었는데 며칠 동안 진짜 혼자 다 먹었다. 그래도 더 먹을 수 있었다.

이런 나를 본 아내는 첫째. 내가 참 이상하다. 둘째, 자신이 시래기 국을 엄청 잘 끓인다. 두 가지였다. (고백하건데 그 당시 아내는 요리를 별로…….)

요리에 자신이 없던 아내가 시래깃국에 자신이 붙었는지... 그 이후 어디서 구해왔는지 무청을 말렸다. 반은 굴비 엮듯, 나머지는 그냥 비 안 맞게 빨랫줄에 척척 걸어 놓았다. 그런데 얼마 후 무청이 누렇게 되었고 너무 말린 것인지, 햇볕에 말린 탓인지 만지자 바삭하게 부셔졌다. 과자 부스러기처럼. 우리는 진짜 아까워 죽는 줄 알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늘에 말려야 했다.

어렸을 때 시래기를 '씨래기'나 '쓰레기'로 들어 그런 걸 왜 먹나 싶었다. 그래선지 어머니가 끓여 주셔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맛도 그렇게 좋은 줄 모르겠고.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시래깃국을 먹고 나면 속이 편안해서 좋았다. 그런데 둘째 아들도 나를 닮은 듯하다. 시래깃국을 먹자 하면 "아빠, 왜 쓰레기를 먹어?"라며 깜짝 놀란다. 그러면서 어릴 적 나처럼 시래깃국을 맛나게 먹지 않는다.

아, 나는 시래기도 좋아하지만 무도 참 좋아한다. 내가 살던 곳은 단무지 공장이 있던 동네였다. 그래서 그 지역 강 근처로는 무밭이 펼쳐져 있었다. 동네 아이들끼리 모여 무 이삭줍기를 하기도 했다. 단무지용으로 적합하지 않아 뽑다가 만 무나 뚝, 부러진 무들도 모두 우리 차지였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사람처럼 생긴 무나 동물 모양처럼 생긴 무였다. 아이들은 종이인형뿐인 그 시절 아기처럼 생긴 무를 업고 보자기나 수건으로 질끈 묶고 놀았다. 말이나 강아지, 토끼처럼 생긴 무로는 동물농장 놀이도 했다.

밤이면 어떤 아이들은 잠자리 옆에 무를 아기처럼 재우기도 하고 동물 모양 무는 책상 위에 장식용(?)으로 올려놓고 눈 맞춤하다 잠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무가 깍두기로 사용되거나 반찬용으로 사용 된 날이면 입이 툭 튀어 나왔다. 그러면서 애써 아픈 마음을 꾹 참았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어쩌면 무보다 무청이 더 환영을 받는 거 같다. 영양분이 많은 무청을 말린 시래기는 영양소가 더 풍부하다고 한다. 그래서 웰빙 식품으로 인기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이렇다보니 강원도 한 마을에서는 무 농사를 지어 아예 무는 뽑지 않고 무청만 잘라다가 큰 하우스에 빼곡하게 말린다고 한다. 하우스의 무청도 어마어마할 것 같지만 푸르게 펼쳐진 무밭의 싱싱한 무청도 아름다울 것 같다. 또한 그 넓이에 입이 쩍 벌어질 듯싶다.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

시래기가 들어간 음식으로는 시래깃국이나 시래기 밥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참 다양하다. 시래기 볶음이나 무침은 물론 시래기 감자탕, 시래기 파스타, 시래기 꽁치조림, 시래기 만두 까지 많기도 하다. 시래기가 들어간 음식들은 어떤 맛일까 궁금하다. 오늘도 여전히 바람이 차다. 올 겨울이 다 가기 전 시래기가 들어간 음식 몇 가지는 꼭 먹어봐야겠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