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조형숙 서원대학교 교수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 뉴시스

학생들과 연구실에서 상담을 할 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문 좀 열어놔 줄래?" 학생들이 들어오면서 문을 닫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나 역시 미국에서 석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지도교수와 면담을 할 때는 지도교수와 면담 시간을 예약한 뒤, 연구실에 찾아가서 노크를 하고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가서는 문을 닫았던 적이 많았다. 지도교수와 둘이서 조용히 이야기하기를 원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우선 습관이었던 것 같다.

남의 방에 들어간 뒤, 복도로 향해 문을 활짝 혹은 반쯤 열어 두고 1시간씩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문화적으로 이상하게 여겨졌다. 지도교수가 문을 열어두라고 나에게 요청을 하면 다시 일어나서 문을 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나와 지도교수 간의 내밀한 이야기를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듣는 것이 싫었고, 나의 서툰 영어를 다른 사람이 듣게 되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나의 경우, 지도교수와의 면담 내용은 학위과정 중 어떤 과목을 수강 신청해야 하는지, 해당 학기 나의 학문적 목표는 무엇이며 진행 사항은 어떻게 되는지 지도교수와 상의하는 것을 포함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슈는 한 학기 1천300만원이 넘는 학비와 관련하여 나의 재정상황을 설명하고 장학금 신청과 학교 내에서 일자리를 찾고 추천서를 받는 것이었다. 학비 때문에 매 학기마다 지도교수와 피를 말리는 신경전과 읍소가 반복되었기 때문에 면담 내용을 남이 들을까봐 몹시 신경이 쓰였다.

나의 석사 지도교수는 나보다 나이가 5살이나 어린 미혼의 백인교수였고 나에게 다소 냉담했다. 반면, 박사 지도교수는 학과 학생들에게 천사라고 불릴 정도로 마음이 따뜻하고 인간적이었다. 석사 지도교수는 내가 그녀의 방문을 닫을 때 묘한 표정으로 쳐다 볼 때도 있었고, 가끔은 자신이 일어나서 방문을 다시 열 때도 있었다. 나는 불쾌했지만 참았다. 그런데 박사에 진학하고 나서 박사 지도교수도 내가 들어와서 방문을 닫으면, 문을 조금만 열어두자고 부드럽게 말하곤 했다.

점차 나도 문을 반쯤 열어둔 채 면담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좁은 공간에 둘이 있는 상황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교수-학생 사이에 일어날 지도 모르는 성희롱이나 위계에 의한 학대와 관련하여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문화적 제스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미투 운동의 확산과 더불어 대학교수들의 제자에 대한 성추행이 끊임없이 폭로되고 있다. 연구실에서 제자를 무릎에 앉히고 성추행을 했다거나, 가슴을 만졌다거나 성희롱 발언 등으로 구설수가 끊임없다. 폭로된 캠퍼스 성추행 사건의 대부분은 남자 교수와 여학생 제자 사이에 일어난 것이 많다. 성추행이 교수-학생이라는 권력관계에서 일어난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여교수-남학생 제자 사이에 일어난 캠퍼스 성추행 사건이 드물기 때문이다. 이는 성추행이 권력관계와 함께 젠더문제라는 뜻이다. 어쩌면, 젠더가 주된 원인이고, 권력관계는 부차적일 수 있다.

조형숙 서원대학교 교수

내가 연구실 문을 열어두고 학생과 면담하는 이유는 많다. 그 중 한 가지는 남학생 제자에 의한 여교수 성추행이 일어날 가능성을 줄이려는 나의 노력이기도 하다. 젠더란 그런 것이다. 나는 수업준비와 연구를 위해 학교 근처에 집을 얻었다. 900미터 남짓이고 걸어서 9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대개는 차를 이용해 출퇴근을 한다. 간혹 늦은 귀가 중에 추행을 당할까 두려워서다. 골목에서 성추행을 하도 많이 당하여 이젠 자구책으로 승용차를 보디가드처럼 활용하는 지혜가 생겼다. 여든이 넘은 나의 모친도 최근 골목에서 젊은 남성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신세한탄을 했다. 젠더란 정말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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