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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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상태메시지에 이런 글귀를 적어놓았다 '아름다운 관계란 서로의 좋은 점을 바라보는 것.' 어디에선가 읽은 글귀가 마음에 들어서 메인으로 걸어두었다. 한 디자이너와의 인연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독 주택과 전원생활을 구호처럼 달고 다니는 남편의 작은 소망에 이끌려 시작된 전원생활. 곳곳에서 새롭게 발견한 자연의 법칙과 그와 더불어 새로운 환경에서 느끼는 재미는 긍정의 에너지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다보면 붉게 번지는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에 더 절정을 느끼는 기쁨과 만족. 비포장 농로를 걷다보면 고라니도 만나고 작은 들꽃도 만나고, 길고양이들과의 눈인사도 재미중의 재미였다. 농로 모퉁이를 돌아 집 쪽으로 가다보면 전원주택지로 분양되는 택지에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가는 집들이 보였다. 산책을 핑계로 새로 짓는 집을 구석구석 돌아보며 호기심을 해소하는 재미 또한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중에 해 저문 마당 울타리에서 환한 달빛을 벗 삼아 나무 심기에 열중인 부부를 만났다. 낯선 동네에 외롭기도 하고 이웃지간에 서로 알고 지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살갑게 받아주는 그녀의 남편과는 달리 나무 심기에만 열중하던 그녀가 왠지 쌀쌀맞게 느껴졌다. 얼마 후 낯선 동네에 터전을 잡게 된 이방인들끼리의 저녁 식사자리가 지인의 집에서 있었다. 그곳에서 두 번째 만난 그녀는 고기 굽기에 열중이었다. 하얀 피부에 도시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그녀는 의외로 소탈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첫 만남에서의 차갑게 느껴졌던 선입견이 의아해지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는 성격상 무엇에 열중하고 있을 때에는 주변에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이 단점이라고 했다. 간단한 본인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서로 다른 사연들이 있지만 저마다의 꿈과 희망을 안고 새로운 동네에서 함께 터를 잡게 된 공통점 하나로 우리는 가까워 졌다. 나와는 다르게 창의력이 뛰어난 그녀는 뭐든지 직접 만드는 걸 좋아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많았고 도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나간 성탄절에도 작은 천 조각들에게 글씨와 그림으로 숨을 불어 넣어준 그녀의 작품들이 공기에 잔물결을 이루며 마당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소심하고 손재주가 없는 나와 다른 면을 가진 그녀가 숨 가쁘게 와 닿았다.

김순덕 수필가

고향 친구가 아니어서인지 서로의 호칭에 애매해 하던 그때, 그녀는 서로의 장점을 살려 김 작가와 한 디자이너로 부르자며 깔깔대고 웃었다. 남들이야 비웃건 말건 우리는 마치 신분이 격상된 듯 만족해하였다.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된다는 것은 참 설레는 일이다. 길고양이들에게 기꺼이 집사가 되어주고 머물 집도 지어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녀. 적당한 거리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서로를 바라봐주는 사람. 어느새 우리는 좋은 일은 두 배로 기뻐해주고 마음 언짢은 일은 서로 달래주는 따뜻한 이웃사촌이 되었다. 원래의 감정을 숨긴 채 얼굴 표정과 몸짓을 해야 하는 감정노동을 하지 않아도 될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매운 겨울. 찬바람이 몰고 온 겨울 내음이 진하게 난다. 햇볕이 머무는 시간에 내어 널어 놓은 이불이 햇살 냄새를 가득 안는다. 투박한 커피콩을 갈고 커피향이 후각을 뒤흔드는 냄새를 흡입하며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커피 마시러 오시게." 만남은 인연이지만 관계는 노력이라는 말이 커피 향 속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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