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황새마을' 자부심 여전… 자랑비 내용 와전 정비 필요

1971년 4월 4일은 대한민국 자연생태계에 크나큰 상처를 남긴 날이다. 공교롭게도 4자가 겹친 날 우리나라 마지막 텃황새(텃새 황새) 번식쌍 중 수컷이 밀렵꾼 총에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 졸지에 홀로 된 암컷은 '과부황새'라는 뼈아픈 이름으로 불리며 외로운 삶을 살다 끝내 숨짐으로써 한반도 텃황새는 절멸했다.
 

주민 김동완씨(83, 왼쪽 사진)가 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 695번지 앞에서 마지막 황새 번식쌍이 살았던 둥지 나무 위치를 가리키며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금정저수지에서 바라본 관성2리 무술마을의 모습으로 녹색 원 안이 김씨가 가리키는 마지막 텃황새의 둥지 나무가 있던 자리다./김성식
주민 김동완씨(83, 왼쪽 사진)가 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 695번지 앞에서 마지막 황새 번식쌍이 살았던 둥지 나무 위치를 가리키며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금정저수지에서 바라본 관성2리 무술마을의 모습으로 녹색 원 안이 김씨가 가리키는 마지막 텃황새의 둥지 나무가 있던 자리다./김성식

◆마지막 텃황새는 이렇게 죽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 해인 1970년 한 일간지는 천연기념물 관련 캠페인성 기획물을 연재했다. 그러면서 그해 12월 기획물에 황새와 먹황새를 소개한 후 황새번식지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던 충북 진천군 이월면 중산리와 음성군 대소면 삼호리 등에 관한 이야기를 실었다.

기사 보도 후 해당 신문사에 중요 제보가 날아들었다. 서울의 한 독자가 자기 고향(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2리)에 황새가 산다고 알려온 것. 이 신문사는 즉시 현지 취재를 통해 황새 서식 사실을 확인, 1면에 보도했다.

1971년 4월 1일자로 보도된 기사 내용은 이랬다. '멸종위기 황새 충북 음성 서식'이란 제목 아래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놓여 국제보호조로 지정돼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6.25 이후 자취를 감췄던 황새가 다시 충북 음성군 생극면에 서식하고 있음이 확인됐다(후략)'고 전했다.

그런데 불과 3일 후 날벼락 같은 소식이 뒤따랐다. 기사를 읽은 서울의 한 포수가 4월 4일 음성 현지로 내려와 황새 수컷을 총으로 쏴 죽인 뒤 서울로 가져가는 일이 벌어졌다. 언론은 앞다퉈 보도했고, 포수는 이틀 만에 경찰에 자수하며 황새를 내놨다. 포수는 집행유예형을 받은 것으로 전한다.

허무하게 죽임당한 마지막 텃황새 수컷은 박제로 만들어져 한 대학교 자연사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밀렵 사건 당시의 또 다른 비화는 더욱 가슴을 쓰라리게 한다. 수컷 황새가 총 맞아 죽은 다음 날 황새 부부가 부화 중이던 알 4개가 돌연 사라졌다. 마을은 줄초상 분위기였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경찰은 부랴부랴 수사에 나서 나흘 만에 범인을 잡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황새 관리인의 집 머슴과 이웃 주민이 신경통에 황새알이 좋다는 풍문을 믿고 알을 훔쳤단다. 이들은 알 한 개씩을 깨 먹고 나머지 두 개는 잿더미 속에 파묻어뒀는데 한 개는 금이 가고 한 개는 곯아 인공부화에 실패하고야 말았다.

당시 암컷은 크게 놀라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참 뒤에나 돌아왔다. 이후 해마다 무정란을 낳으며 외롭게 살았다. 그러던 중 1983년 8월 마을 앞 금정저수지 인근 논에 농약중독으로 쓰러져 있는 것을 구조해 창경원 동물원으로 옮겨 보호했다. 그러나 이 암컷마저도 다시 옮겨진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1994년 9월 23일 숨을 거둠으로써 한반도 텃황새는 대가 끊겼다. 암컷 역시 박제 형태로 인천 국립생물자원관에 전시돼 있다.

◆'마지막 황새마을'의 꺼져 가는 기억

음성군 생극면 관성2리 무술마을. 우리나라 마지막 텃황새 번식쌍이 살았다는 자긍심과 그 번식쌍이 모두 좋지 않은 일로 죽은 아픈 기억이 양존하는 옛 황새마을이다.

이 마을에 살던 황새 수컷이 밀렵꾼 총에 죽은 지 52년, 암컷이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죽은 지 29년이 지난 지금 주민들은 황새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해 현지를 찾았다.

관성리는 한강수계에 속하지만 전편에 소개한 음성군 대소면 삼호리 황새번식지와는 직선거리로 약 1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데다, 삼호리 주민 중 일부는 삼호리에 살던 황새가 관성리로 이동해 간 것으로 아는 등 관련이 있기에 이의 확인 차원에서도 현지취재가 필요했다.

예전에 황새가 자주 찾았던 금정저수지에는 본래 겨울철새였으나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텃새화한 청둥오리와 민물가마우지(배가 검은 새)가 점령한 채 주인 행세를 하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김성식
예전에 황새가 자주 찾았던 금정저수지에는 본래 겨울철새였으나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텃새화한 청둥오리와 민물가마우지(배가 검은 새)가 점령한 채 주인 행세를 하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김성식

음성군 생극면 금정저수지에서 서쪽으로 인접한 마을이 관성2리 무술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려는데 오른쪽으로 1997년 건립된 마을자랑비가 서 있다. 혹시나 하고 마을 내력을 보니 뜻밖의 내용이 들어있다. '(전략)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던 황새 한 쌍이 1971년 우리 마을로 들어와 둥지를 틀었으나 1978년 밀렵꾼에 의해 수컷이 희생된 뒤 외롭게 둥지를 지키던 암컷도 1983년 8월 창경원으로 옮겨져 보호받다가 1994년 서울대공원에서 수명을 다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는 (황새가) 완전 멸종됐지만 우리의 가슴에 아쉽게 남아 있다(후략)'고 기록돼 있다.

황새 한 쌍이 1971년 마을로 들어와 둥지 틀었다는 내용과 1978년 밀렵꾼에 의해 수컷이 희생됐다는 내용은 그동안 알려진 것과 사뭇 다르다.

수소문 끝에 마을자랑비가 세워지기 훨씬 전에 이장직을 수행했다는 김동완씨(83)를 만나 황새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씨는 반갑게 관성리 695번지로 안내하면서 현재의 은행나무 왼쪽이 황새 둥지나무가 있던 자리라고 증언했다. 나무 종류에 대해선 곧고 커다랗게 자란 전나무였다고 기억했다. 수컷이 죽고 난 후엔 인근에 인공둥지를 만들어줬으나 잘 들지 않았고 이후엔 지금의 군부대 쪽 산자락 소나무에 둥지 틀었다고도 했다.

김씨는 또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 마을에 황새가 살았으며 어렸을 적엔 황새 둥지가 마을 앞 도로변 쪽에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무술마을은 저수지는 물론 마을 주변으로도 미꾸라지 등 물고기가 지천했다"며 "아마 그래서 황새가 살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학술논문 상의 마지막 황새

좀 더 확실한 기록을 위해 학술논문을 검색해 봤다. 다행히도 석사학위논문 한 편을 찾아냈다. '우리나라 문헌에 나타난 황새(Ciconia boyciana)에 관한 조사연구(한국교원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저자 소문숙 생물교육전공, 2007년)'는 우리나라 마지막 황새에 관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2리 무술마을(무수동)의 마을자랑비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던 황새 한 쌍이 1971년 마을로 들어와 둥지를 틀었으나 1978년 밀렵꾼에 의해 수컷이 희생됐다'고 기록(밑줄친 부분)돼 있으나 그동안 전해진 내용과는 크게 다르다./김성식
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2리 무술마을(무수동)의 마을자랑비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던 황새 한 쌍이 1971년 마을로 들어와 둥지를 틀었으나 1978년 밀렵꾼에 의해 수컷이 희생됐다'고 기록(밑줄친 부분)돼 있으나 그동안 전해진 내용과는 크게 다르다./김성식

특히 이 논문에는 일명 과부황새가 둥지를 틀었던 나무와 관련해 2장의 사진이 적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즉 '감나무 위의 과부황새(곽준영, 1980)' 사진과 '과부황새가 최종 둥지 틀었던 아까시나무(원병오, 2002)'는 황새 연구사에 있어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아쉽다면 과부황새가 살았다는 감나무가 수컷이 죽기 전부터 둥지 나무로 이용된 것인지, 또 그 이후 1978년 번개 맞아 쓰러질 때까지 계속 둥지 나무로 이용된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는 점이다. 우리나라 최후의 황새 번식쌍이 마지막으로 새끼 친 둥지 나무와 수컷 황새가 죽은 뒤 과부황새가 홀로 마지막으로 이용한 둥지 나무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증언한 김동완씨는 수컷 황새가 밀렵당할 당시의 둥지 나무는 감나무가 아닌 전나무로 기억하고 있기에 이의 확인 차원에서도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한편 이번 관성리 취재 내용과 위의 논문 등을 종합할 때 전편에서 삼호리 주민이 증언한 내용 중 '삼호리에서 관성리로 마지막 황새가 이동했을 가능성' 부분은 타당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학인됐다.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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