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인근서 유물 출토… 직지 탄생지 '청주 흥덕사지' 확인

사적지 제315호인 충북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866번지 일대에 복원된 흥덕사 금당. 흥덕사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직지가 인쇄된 곳으로 세계 인쇄문화의 메카로 인식되고 있다. 오른쪽 하단은 흥덕사지가 무심천과 미호강의 품 안에 있음을 알려주는 위치도. /김성식
사적지 제315호인 충북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866번지 일대에 복원된 흥덕사 금당. 흥덕사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직지가 인쇄된 곳으로 세계 인쇄문화의 메카로 인식되고 있다. 오른쪽 하단은 흥덕사지가 무심천과 미호강의 품 안에 있음을 알려주는 위치도. /김성식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미호강을 세계적인 강이라 부르는 가장 큰 이유는 품 안의 두 유적이 인류 문화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길이 89.2km, 유역면적 1861㎢에 불과한 작은 강이지만 길이 빛날 두 유적이 인류 문화사에 끼친 영향은 자못 크다.

1980~90년대 미호강의 품 안에서는 두 유적이 잇따라 발굴됐다. 먼저 1985년에 발굴된 청주 흥덕사지 유적은 미호강 일대가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 탄생한 곳임을 전 세계에 알렸다. 청주 흥덕사지는 무심천 인근에 위치하고 무심천은 미호강의 대표적인 지류다. 이는 곧 미호강 품 안의 청주 흥덕사지가 한국의 인쇄문화, 나아가 세계 인쇄문화를 꽃피운 곳임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이어 1997년 11월부터 1998년 4월까지 6개월간의 발굴조사를 비롯해 여러 차례 조사가 이뤄진 청주 소로리 구석기 유적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만7천년 전의 볍씨가 찾아져 미호강 일대가 세계 벼 및 벼 재배문화의 기원지이자 인류 생명문화의 메카로 인식되는 일대 전환점이 됐다. 한 마디로 미호강이 인쇄문화를 꽃피우고 세계 벼문화를 싹틔운 '작지만 세계적인 강'임을 입증한다.

 

미호강의 위상을 바꾼 위대한 발굴

1984년 11월 충북 청주시 운천동의 양병산 동남쪽 사면에서는 훗날 충북 청주시와 미호강의 위상을 전 세계에 떨치게 되는 중요한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그해 12월부터 진행키로 계획된 한국토지공사의 운천지구 택지개발사업에 앞서 충북도가 사업부지 내 절터(연당리사지)에 대한 발굴조사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청주대학교박물관에 의뢰해 발굴조사를 진행토록 한 것이다. 택지개발로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있었던 문화유적이 이 발굴조사를 통해 실체가 밝혀지면서 역사의 한 장으로 남게 되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

청주시 운천동 일대는 미호강 지류인 무심천과 인접한 곳으로, 오래전부터 많은 불교유물들이 발견되고 옛 절터도 있었으나 문헌에 없다는 이유로 지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다.

조사에 들어간 청주대학교박물관은 연당리사지 인근에서 화강암으로 된 초석 3기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치미 조각과 기와 조각을 수습하는 등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옛 절터를 찾아냈다. 특히 치미는 고대 목조건축에서 용마루의 양 끝에 높게 부착하던 장식기와를 뜻하는 것으로, 당시 조사 초기에 치미 조각이 발견됨에 따라 이 일대가 절터일 가능성을 높여줬다.

청주대학교박물관은 이어 1985년 10월 그야말로 역사적인 엄청난 유물을 확인했다. 이미 진행 중인 공사장의 포클레인에 찍혀 훼손된 채 흙과 함께 반출됐다 우여곡절 끝에 되돌아온 쇠북(청동 금구)을 입수하고 커다란 청동 불발(佛鉢) 뚜껑을 찾아냈다. 이 두 유물은 모두 절에서 사용하는 불기들이다.

쇠북에서는 '갑인오월일서원부흥덕사금구일좌(甲寅五月日西原府興德寺禁口臺座)'라는 명문이 확인되고 청동 불발 뚜껑에서는 '황통10년흥덕사(皇統十年興悳寺)'라는 명문이 확인돼 이 절터가 바로 고려 우왕 3년인 1377년에 '직지'를 인쇄한 흥덕사지임이 밝혀지게 됐다. 직지의 원명칭인 '백운화상초록직지심체요절'의 권하(卷下) 말미에 씌어 있는 '청주목 흥덕사지'의 실체와 위치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택지개발 공사가 시작되기 한 달 전에 서둘러 진행한 충북도의 긴급 발굴조사가 직지와 관련된 역사의 퍼즐을 꿰어맞추는 위대한 결과를 낳았다.
 

인쇄문화의 메카로 우뚝

청주고인쇄박물관이 복원해 전시하고 있는 '직지' 금속활자 복원판. 청주고인쇄박물관 입구에 상징물처럼 전시되고 있다. /김성식
청주고인쇄박물관이 복원해 전시하고 있는 '직지' 금속활자 복원판. 청주고인쇄박물관 입구에 상징물처럼 전시되고 있다. /김성식

직지는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서 독일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보다 78년 앞서 간행됐다.

금속활자의 발명은 지난 천 년 동안 일어난 가장 위대한 사건으로 꼽힐 만큼 인류문화 발달사에 크게 공헌했으며 특히 세계 정보화에 있어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충북도와 청주대학교박물관의 노력으로 청주 흥덕사지의 실체와 위치가 확인됨에 따라 당시 문화공보부는 흥덕사지 일원에 대한 개발 중지와 함께 보존 지시를 내리는 한편 이듬해인 1986년 5월에는 문화재위원회 의결을 거쳐 흥덕사지를 사적(史蹟) 315호로 지정 공고하기에 이르렀다.

청주시는 1987년부터 5년에 걸쳐 흥덕사지를 복원 정비하고 인근에 청주고인쇄박물관을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로써 청주 흥덕사지는 명실공히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를 탄생시킨 세계 인쇄문화의 메카로 우뚝 서게 됐다.

아울러 해당 지자체인 청주시는 '직지의 고장'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게 됐고, 흥덕사지를 품은 무심천과 미호강은 인쇄문화의 요람이라는 트레이드 마크 같은 별칭을 얻게 됐다.

미호강 대탐사를 기획하면서 미호강의 수식어로 '세계적인 생명터'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남다른 생태 특성과 함께 인쇄문화의 메카이자 벼문화의 기원지(다음 편에서 다룰 예정)로서 인류 문화사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란 점을 다시금 강조한다.

 

 

직지의 탄생지 밝혀준 '극적인 유물'

멸실 위기서 소중한 유물 된 청동 금구 '후대에 교훈'

'흥덕사명' 청동 금구(쇠북)의 본체. 잘려진 부분과 함께 '서원부흥덕사(西原府興德寺)'에서 청동 금구를 만들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직지 탄생지인 흥덕사의 위치를 밝혀준 소중한 유물이다. /김성식
'흥덕사명' 청동 금구(쇠북)의 본체. 잘려진 부분과 함께 '서원부흥덕사(西原府興德寺)'에서 청동 금구를 만들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직지 탄생지인 흥덕사의 위치를 밝혀준 소중한 유물이다. /김성식

청주 흥덕사지에 대한 발굴조사(청주대학교박물관의 연당리사지 발굴조사)는 1985년 본격 진행됐다. 하지만 이미 전년도 말부터 시작된 운천동 택지개발공사로 인해 절터의 많은 부분이 훼손된 상태였다고 한다. 특히 그 과정에서 공사장 내 다른 곳으로 옮겨진 흙의 양이 제법 많았는데 그 흙 속에 확인되지 않은 유물들이 섞여 있었다.

깜짝 놀랄 일은 흩어진 유물들 속에 흥덕사의 실체를 풀 핵심 유물인 쇠북(청동 금구)이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다. 공사장의 포클레인에 찍혀 두 동강 난 채 흩어졌던 쇠북은 참으로 우여곡절 끝에 서로 만나게 됐는데 그 과정이 극적이다. 흥덕사라는 글씨가 새겨진 쇠북 조각은 주민이 발견해 다른 유물과 함께 고물상에 넘겼고 고물상은 다시 문화재 매매업자에게 넘겼다. 그런데 이를 구입한 '양심 있는' 문화재 매매업자가 고물상에 흥덕사명 쇠북 조각을 돌려주면서 발굴기관에 연락하도록 해 발굴조사단이 입수하게 됐다고 한다.

쇠북의 본체는 공사장 인근에서 한 시민에 의해 발견돼 충북대학교박물관에 기증됐다가 얼마 뒤 떨어져 나갔던 조각과 만나게 된다. 소식을 접한 충북도가 나서서 발굴조사단이 입수한 쇠북 조각과 맞춰본 결과 같은 유물이란 것이 확인돼 '극적인 만남'이 이뤄지게 됐다.

청동 쇠북을 계기로 발굴조사단은 금속탐지기를 이용한 정밀조사를 벌여 흥덕사란 글씨가 새겨진 또 다른 유물인 불발 뚜껑을 비롯해 많은 유물을 찾아냈다.

'서원부흥덕사(西原府興德寺)'라고 새겨진 쇠북과 '황통10년(皇統十年)…흥덕사(興德寺)'라고 새겨진 불발 뚜껑은 당시까지만 해도 알려지지 않았던 연당리 절터가 직지의 탄생지인 청주 흥덕사지임을 밝혀 준 소중한 유물로 기록됐다.

직지 하권 맨 끝에 '선광 7년 정사 7월일에 청주목 밖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책을 찍다(宣光七年丁巳七月日 淸州牧外興德寺 鑄字印施)'라는 두 줄의 맺음말이 품고 있던 수수께끼, 즉 직지를 금속활자로 찍어 낸 흥덕사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풀어준 선물 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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