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 소로리서 1만7천년 전 볍씨 출토… 구석기인들 삶의 터전 입증

미호강변의 청주 소로리 구석기 유적에서 검출된 '으뜸벼' 모습(충북도농업기술원 농업과학관 전시). 한국벼의 으뜸이자 재배벼의 조상으로 'Oryza sativa coreaca'라는 학명이 붙여졌다./김성식
미호강변의 청주 소로리 구석기 유적에서 검출된 '으뜸벼' 모습(충북도농업기술원 농업과학관 전시). 한국벼의 으뜸이자 재배벼의 조상으로 'Oryza sativa coreaca'라는 학명이 붙여졌다./김성식

 

미호강변서 세계 최고의 볍씨 찾아지다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미호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만7천 년 전의 볍씨가 출토된 유적을 품고 있다. 재배벼의 기원지이자 벼재배문화를 싹틔운 강이다. 작지만 세계적인 강이라 부르는 핵심 이유 중의 하나다.

청주 흥덕사지 유적에 이어 미호강의 위상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떨친 기념비적인 유적은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의 소로리 구석기 유적이다. 소로리 유적은 여러 층위가 확인된 구석기 시대 유적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조사 연구가 진행됐다.

1994년 3월부터 6월까지 있었던 지표조사(충북대학교박물관)를 시작으로 1996년 12월부터 1997년 1월까지 실시된 시굴조사(충북대학교박물관), 1997년 11월부터 1998년 4월까지 6개월간 진행된 발굴조사(충북대학교·단국대학교·서울시립대학교박물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2001년 9~10월의 2차 발굴조사(충북대학교박물관), 2012년 6~7월의 3차 시추조사(한국선사문화연구원) 등 일련의 조사가 이뤄졌다.

조사 결과 충북대학교박물관이 1·2차 발굴한 소로리유적 'A지구 토탄 II구역'에서는 3개의 토탄층이 층서적으로 퇴적돼 있음이 확인된 가운데 모두 127톨(으뜸벼 18톨, 유사벼 109톨)의 볍씨가 검출돼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검출된 볍씨 중 유사벼가 으뜸벼보다 6배 많이 나타남으로써 당시 유사벼가 우점종으로서 사람들의 주된 먹거리였을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괄목할 만한 조사 결과는 소로리 볍씨의 연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만7천 년 전의 볍씨인 것으로 밝혀져 벼의 기원과 진화, 전파 등에 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게 됐다.
 

 

소로리볍씨 'Oryza sativa coreaca'의 탄생

청주 소로리유적 발굴의 주역 이융조 박사. 
청주 소로리유적 발굴의 주역 이융조 박사. 

소로리유적 발굴의 주역으로 알려진 이융조 박사(충북대학교 명예교수)는 소로리볍씨에 대해 "재배벼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재배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반재배단계와 초기 농경단계 사이의 순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벼라는 의미에서 순화 초기의 벼 성격을 띤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그 이유로 "소로리볍씨의 연대가 1만7천 년 전으로 측정됐고 DNA분석에서 현재벼와는 완전히 다른 그룹에 속하며 야생벼·japonica·indica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점, 전자주사현미경(SEM) 관찰에서 야생벼와는 다르게 소지경(낟알꼭지)에서 인위적인 절단면이 확인된 점, 토탄 출토지점 옆에서 구석기유물이 다수 출토된 점 등을 들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로리볍씨는 한국벼의 으뜸이자 재배벼의 조상"이라며 "청주 소로리에서 검출된 한국의 으뜸벼라는 의미 등을 담아 학명을 'Oryza sativa coreaca'로 명명했다"고 말했다. 미호강이 낳은 자랑스러운 학명 'Oryza sativa coreaca'는 이렇게 해서 탄생됐다.

여기서 한 가지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소로리볍씨인 'Oryza sativa coreaca'가 벼 재배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단서란 점이다. 이는 곧 소로리를 포함한 미호강 일대가 벼재배문화의 태동지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벼의 소지경은 벼 이삭과 낟알을 연결하는 꼭지를 말한다. 소로리볍씨에서는 이 낟알꼭지가 인위적으로 잘린 것이 전자주사현미경 관찰을 통해 확인됐으며, 이는 곧 벼 이삭을 사람의 손으로 수확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다.

사용 흔적이 확인된 소로리 출토 홈날연모(충북대학교박물관). 소로리 유적에서 검출된 으뜸벼의 낟알꼭지가 인위적으로 잘린 흔적이 있는 것은 당시 구석기인들이 홈날연모 등으로 볍씨를 수확했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성식
사용 흔적이 확인된 소로리 출토 홈날연모(충북대학교박물관). 소로리 유적에서 검출된 으뜸벼의 낟알꼭지가 인위적으로 잘린 흔적이 있는 것은 당시 구석기인들이 홈날연모 등으로 볍씨를 수확했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성식

이와 함께 소로리 유적에서는 '사용된 흔적이 있는 홈날연모(석기)'가 함께 출토됐는데 이 박사 등 연구진은 당시 미호강 사람들이 이 홈날연모를 이용해 볍씨를 수확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미호강은 이처럼 오래전에 벼재배에 눈을 떴던 소로리 구석기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세계가 인정한 '재배벼의 기원지'

개발로 인해 멸실 위기 직면…유적지 보존 위해 힘써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2리 입구 508번 지방도변에 세워진 청주 소로리볍씨 상징조형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2리 입구 508번 지방도변에 세워진 청주 소로리볍씨 상징조형물.

소로리볍씨는 지난 2002년 12월 당시 청원군과 충북대학교박물관이 주관한 국제회의의 성과에 힘입어 이듬해 영국 BBC뉴스와 프랑스 르몽드, 기타 인터넷뉴스 등에 '순화벼(domesticated rice)'로 소개되면서 그 가치가 널리 알려진 바 있다.

2003년 BBC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벼가 발견됐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의) 과학자들이 한반도 소로리에서 가장 오래된 순화벼를 발견했다"고 알렸다. 특히 세계 고고학 개론서인 'Archaeology'도 벼의 기원지를 한국으로 명시함으로써 소로리볍씨를 높게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이융조 박사는 "지난 2004년 10월 유네스코 본부 핵심 관계자 2명이 우리나라 문화재청장에게 서한을 보내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유적이자 1만7천 년이나 된 동북아시아의 쌀 재배 역사를 보여주는 충북 소로리 유적지가 상업적 개발로 인해 멸실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됐다. 벼 재배의 진화를 보여주는 유일한 증거인 이 유적지는 후대를 위해 보존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전한다'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적지 보존을 위해 힘써 주기를 간곡히 호소한다'고 했을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미호강변의 청주 소로리 유적에서 검출된 1만7천 년 전의 볍씨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인정받으며 재배벼의 기원지, 벼재배문화의 태동지가 청주와 미호강임을 알려주는 소중한 유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청주 소로리 유적은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남촌리 1113-9번지 일대로, 현재 소로리 볍씨 상징조형물이 세워진 곳(508번 지방도변)에서 북동쪽으로 약 7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청주시는 소로리에서 세계 최고의 볍씨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심벌마크를 소로리 볍씨를 상징화한 것으로 정하고 청주시가 재배벼의 기원지이자 벼재배문화의 태동지로서 생명문화를 중시하는 도시라는 이미지를 적극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청원군과 통합하기 전부터 전국적인 인기를 누려온 '청원생명쌀'은 세계 최고의 소로리 볍씨가 출토된 미호강변의 충적토에서 생산된 쌀로, 전국쌀품평회에서 3년 연속 쌀 품질평가 대상, LOVE-米 8회 수상, 17년 연속 대한민국 LOHAS 인증 등 품질면에서 꾸준히 최고를 자랑하면서 "역시 재배벼의 기원지, 벼재배문화의 태동지에서 난 쌀답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반도의 기후 변화 등을 연구하는 정용승 박사(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는 "예전 구석기인들이 미호강변에 머물면서 벼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그만큼 기후가 온화하고 토질도 좋으며 강물도 그다지 깊지 않은 등 환경 조건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라며 "당시의 환경 조건은 지금보다 훨씬 더 양호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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