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평야서 37회 걸쳐 총 809마리 관찰… 이례적 출현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올겨울은 미호강 생태계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분 특별한 시즌이었다. 아니 최고의 겨울이었다. 1970~80년대 미호강에 개발과 환경오염의 얼룩이 물들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라 할 정도로 반가운 소식이 잇따랐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게 2개의 빅뉴스다. 하나는 재두루미의 이례적 방문이고 다른 하나는 노랑부리저어새의 잇단 출현이다. 둘 다 개체수 급증이란 공통점이 있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먼저 재두루미부터 살펴본다.
 

데자뷰 같은 재두루미와의 만남

재두루미와 관련한 빅뉴스의 단초는 우연한 기회에 포착됐다. 겨울진객 쇠부엉이를 촬영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살피던 중 뜻밖의 손님을 목격한 게 실마리가 됐다. 2022년 12월 18일 오후 5시쯤 무심천 합수부 인근에서 있었던 일이다. 해그림자가 빠르게 제 키를 키워가던 그 시각, 미호강 상공에서 4마리의 범상치 않은 새들이 사선을 그으며 내려앉았다.

2023년 2월 3일 하루 최다인 52마리가 관찰됐을 당시 미호평야 내 유리 들녘(청주시 오창읍)에서 촬영한 37마리의 재두루미들. 이번 조사 기간 중 만난 가장 큰 집단이다./김성식
2023년 2월 3일 하루 최다인 52마리가 관찰됐을 당시 미호평야 내 유리 들녘(청주시 오창읍)에서 촬영한 37마리의 재두루미들. 이번 조사 기간 중 만난 가장 큰 집단이다./김성식

짧은 시간이지만 특유의 날갯짓에 어떤 새란 걸 금세 눈치챘다. 재두루미였다. 실로 뜻밖의 손님이었다.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카메라 삼각대를 접는 둥 마는 둥 정신없이 그쪽으로 향했다.

서둘렀지만 이미 늦었다. 해그림자를 삼켜버린 땅거미가 발걸음을 막아섰다. 아쉽지만 재두루미와의 만남은 다음날로 미뤄야 했다.

예측은 맞았다. 날이 밝기도 전에 달려간 곳에 마치 데자뷰(deja vu)처럼 재두루미 4마리가 먹이를 먹고 있었다. 전날 본 개체들이었다. 그들을 처음 만난 곳은 미호강 생태곳간의 든든한 배경인 미호평야 내 농경지(논)였다. 미호강에서 펼쳐진 '53일간의 재두루미 추적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재두루미는 어떤 새?

재두루미(학명 Grus vipio)는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 야생생물(2급)로 지정된 희귀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취약(VU, Vulnerable) 등급으로 분류한 국제보호종이기도 하다. IUCN은 이 종을 야생에서 절멸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2022년 12월 18일 재두루미를 처음 목격했을 당시 4마리가 미호강변으로 내려 앉는 모습./김성식
2022년 12월 18일 재두루미를 처음 목격했을 당시 4마리가 미호강변으로 내려 앉는 모습./김성식

우리나라에는 10월 하순쯤 찾아와 이듬해 3월 돌아가는 겨울새다.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비교적 많은 무리가 전국 각지에 찾아와 겨울을 났지만 전쟁 이후 급감했다고 전한다. 지금은 철원평야, 주남저수지 등 주요 월동지조차 1천마리 이상의 무리를 보기 힘든 상황이 됐다. 해에 따라서는 이들 월동지에서 수백 마리는커녕 수십 마리도 보기 어렵다고 한다.

 

53일간의 관찰 기록…올겨울 출현 현황

중부매일 취재팀은 2022년 12월 18일 미호강에서 4마리의 재두루미를 첫 목격한 후 2023년 2월 8일까지 53일간의 추적에 들어갔다. 취재팀은 특히 이 기간 중 모두 37차례에 걸쳐 총 809마리를 관찰해 <도표>미호강의 재두루미 관찰일지를 만들었다.

53일간의 추적을 마친 소감은 한마디로 '놀랍다'다. 그동안 미호강의 재두루미 관찰기록은 거의 없었다. 과거 일제강점기 천연기념물인 진천의 학 번식지(미호강 상류)에 수많은 학(황새와 두루미류를 일컬음)이 날아왔다고 하나 전설이 된 지 오래다. 최근 들어 미호강에 재두루미가 찾아오긴 하지만 불규칙적이고 개체수도 극소수다. 이들 중 일부가 언론을 타고 이따금 전해졌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겨울은 달랐다. 한 해 겨울에, 그것도 겨울 중간에 시작하고 마친 조사에서 모두 809마리나 관찰됐다. 놀라운 숫자다. 미호강의 올겨울이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관찰일지에 나타나 있듯이 이번 조사는 53일 동안 37차례에 걸쳐 이뤄졌으며 모두 809마리의 재두루미가 관찰됐다. 조사 1회당 평균 22마리꼴이다. 조사기간 중 현지조사를 하지 않은 날까지 합쳐 평균을 내어도 15.3마리에 이른다. 결코 적지 않다.

가장 많이 관찰된 날은 2023년 2월 3일로, 미호평야 A지구에서 37마리, B지구에서 15마리 등 52마리가 확인됐다. 이날 37마리가 나타난 청주시 오창읍 유리들판은 철원평야를 방불케 했다. 기다리던 끝에 37마리가 모두 한 카메라 앵글에 들어왔을 때의 희열은 매우 오래 남을 것 같다.

청주시 정북토성 인근을 찾아 청주시민들에게 '깜짝 선물'을 안겼던 재두루미들. 뒤로 보이는 검푸른 빛의 나무들이 정북토성의 상징인 소나무들이다./김성식
청주시 정북토성 인근을 찾아 청주시민들에게 '깜짝 선물'을 안겼던 재두루미들. 뒤로 보이는 검푸른 빛의 나무들이 정북토성의 상징인 소나무들이다./김성식

조사 기간 중 또 인상 깊었던 건 재두루미들이 청주의 오랜 랜드마크인 정북동 토성 인근을 방문했을 때다. 2022년 12월 24일 정북동 들녘에 나타난 6마리의 재두루미가 이틀 후 정북통 토성 가까이 접근해 가까스로 토성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담은 게 지금도 생생하다. 극적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사용하는 게 아닐까 싶다. 비록 재두루미들이 원하는 지점에, 원하는 포즈를 취해주진 않았지만 정북동 토성을 배경으로 재두루미 6마리가 담긴 생태사진 한 컷 남길 수 있게 된 게 여간 뿌듯한 게 아니다. 재두루미들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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