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월동 개체 60% 찾는 생태계 보고

동이 트자 황오리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내려앉기를 반복하며 세를 과시하고 있다. 이러한 일사불란한 행동은 월동시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김성식
동이 트자 황오리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내려앉기를 반복하며 세를 과시하고 있다. 이러한 일사불란한 행동은 월동시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김성식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황오리의 국내 최대 월동지인 미호강을 찾은 것은 설 이틀 뒤인 1월 24일 새벽. 미호강의 겨울 해돋이 촬영을 위해 벼르고 벼른 날 하필 청주지역 최저기온이 영하 17도까지 곤두박질했다. 첫 탐사 행보를 혹독한 신고식으로 시작했다.

오전 7시40분을 넘어서자 구름 사이로 빼꼼히 드러난 해가 참았던 빛을 토했다. 해는 한남금북정맥이 지나는 청주 것대산 부근으로 솟아올랐다. 찬란하다고 할까. 황홀하다고 할까. 2023년 설 무렵의 미호강 해돋이는 꽤나 인상 깊었다. 온난화로 점차 죽은말(死語)이 되어가던 동장군이 졸지에 되살아난 영향이 컸다.

미호강에 비친 햇살도 범상치 않았다. 살얼음이 살짝 언 듯한 여울물에는 일찌감치 잠에서 깬 오리들이 고양이 울음 같은 독특한 소리로 소통하며 기다렸다는 듯 햇빛을 반겼다. 황오리(학명 Tadorna ferruginea, 영명 Ruddy Shelduck)들이다. 미호강 생태계를 '더욱 미호강스럽게' 지탱해 주는 버팀목 같은 존재다. 이번 탐사의 첫 대상으로 삼을 만큼 미호강을 대표하는 생명붙이다.

추울수록 물가새들은 물속을 찾는다고 하는데 이날 미호강의 황오리들도 얼지 않은 수면을 찾아 모두들 다리를 담그고 있었다. 아마도 물 바깥보다 얼지 않은 물속이 더 따뜻한가 보다.

월동하는 황오리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일사불란한 행동이다. 마치 잘 훈련된 병사들을 연상케 한다. 이날도 동이 튼 후 여러 차례 일제히 날아올랐다 앉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위치가 달라졌다. 새 날을 맞는 일종의 의식처럼 보이기도 하고 무리의 안녕을 다지기 위한 단합 행동 혹은 세 과시 같아 보이기도 했다. 황오리들은 이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30여 년 만에 '국내 최대 월동지'

미호강 모래톱에서 휴식하던 황오리들이 날아오르고 있다.  /김성식
미호강 모래톱에서 휴식하던 황오리들이 날아오르고 있다.  /김성식

황오리는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선명한 주황색 깃털을 가진 오릿과의 새다. 몸길이 약 64cm로 기러기 다음으로 큰 대형종이다. 몽골, 중국 북부, 러시아 등지에서 번식하고 한국, 일본, 중국 남부 등에서 겨울을 난다.

한국에는 해마다 겨울이면 2천마리 가량이 찾아온다. 조류도감은 흔하지 않은 새(UC, Uncommon)로 소개한다. 월동지가 위치한 경기도에서는 2012년 5월 보호종으로 지정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황오리를 관심대상(LC)으로 분류한다. 현재의 멸종 위험은 낮지만 관심 가져야 할 생물종이란 평가다.

황오리가 미호강과 금강 수계에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말쯤이다. 그 무렵엔 단 몇 마리만 나타나도 '희귀종 출현'이라며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당시 금강과 미호강이 만나는 합강리 부근에서 처음으로 황오리를 마주했을 때의 설레임이 아직도 선하다.

그러던 것이 30여년 만에 미호강 생태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미호강과 관련해 황오리가 특히 주목받는 것은 미호강을 찾는 황오리 숫자가 해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를 찾는 황오리는 경기 김포 한강하구와 충북 청주 미호강에서 각각 절반가량씩 나뉘어 겨울을 나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2~3년 전부터는 미호강 쪽으로 더 많은 개체가 찾아오면서 미호강이 황오리의 국내 최대 월동지로 떠올랐다. 특히 2022년 1~2월에는 하루 최대 1200마리까지 확인돼 가장 많은 숫자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를 찾는 전체 황오리의 약 60%에 해당하는 숫자다. 올해는 2월 초 현재까지 아직 지난해 최대 개체수에 못 미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호강은 황오리의 국내 최대 월동지 역할을 하고 있다.

미호강에서 현재 황오리가 집중 관찰되는 지역은 미호강과 무심천이 만나는 합수부를 중심으로 상·하류 약 10km 구간이다. 그 외에는 미호강과 금강이 만나는 세종시 관내 합강리 부근에서 상당수가 관찰된다.

 

번식지에선 신성시, 월동지에선 천덕꾸러기?

황오리는 몽골, 중국 북부, 러시아 등 번식지에선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 번식지는 티베트불교가 성행하는 지역이어서 이 지역 불교신자들은 황오리의 깃털 색깔이 티베트 불교의 승려들이 입는 승복과 흡사하다고 여겨 신성시한단다.

성격도 번식기와 월동기에 각기 다르다. 번식기엔 번식쌍끼리 단독 생활하며 다른 개체나 새들이 다가오면 무척 경계하고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월동지에선 전혀 다른 성격을 보인다. 대부분 무리생활하며 서로 평화롭게 지낸다. 번식기의 성격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쩜 저렇게 여유롭고 얌전한 새들이 있나"라고 감탄할 정도다.

이러한 황오리들도 갑자기 부산스러울 때가 있다. 흰꼬리수리 같은 대형 맹금류가 나타날 때다. 맹금류만 주변에 나타나면 반사적으로 일제히 날아올라 천적을 혼란스럽게 한다. 경우에 따라선 무리 지어 천적에게 달려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몸을 피하고 보는 '덩치 큰 겁쟁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를 찾는 황오리들이 죄인 취급 당하고 있다. 다름 아닌 AI(조류인플루엔자) 때문이다. 최근 연례행사격으로 겨울만 되면 AI가 발생하다 보니 겨울철새인 황오리도 누명을 쓴 채 따가운 눈총을 받기 일쑤다. 다음 편에서는 황오리의 미호강 생활과 보호책 등을 다룬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