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무관심 지자체 '월동지·먹이터 지켜라'

황오리들이 먹이터인 미호평야 내 농경지로 내려앉고 있다. 미호강을 찾는 황오리들은 대부분 인근 미호평야로 이동해 먹이활동을 한다./김성식
황오리들이 먹이터인 미호평야 내 농경지로 내려앉고 있다. 미호강을 찾는 황오리들은 대부분 인근 미호평야로 이동해 먹이활동을 한다./김성식

 

먹이터 오가는 황오리떼 '장관'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미호강을 찾은 황오리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황오리들은 대부분 먹는 일과 쉬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하루에 두 번, 오전과 오후에 각 한 차례씩 먹이터로 이동했다 휴식터로 돌아오길 반복한다.

예외가 있긴 하다. 이동시기에 미호강에 처음 도착해서는 한동안 하루에 한 번만 먹이터를 찾기도 한다. 또 천적이 나타나 황급히 휴식터에서 날아오른 경우 그대로 먹이터를 향하는 경우도 있다. 그 외엔 거의 매일 하루 두 번씩 먹이터와 휴식터를 오간다.

많게는 수백 마리, 적게는 수십 마리가 무리 지어 먹이터와 휴식터를 오가는 모습은 미호강의 대표 겨울풍경이 됐다. 금강하구 등이 가창오리 군무로 명소가 됐듯이 미호강에서 펼쳐지는 황오리 군무도 지역을 알리는 자원이 될 가치가 있다.

황오리의 하루 일과는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 안에 그들만의 독특한 생존법칙이 있다.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다. 우선 먹이터로 갈 때의 행동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놀라운 게 먹이터의 방향과 지점을 무리의 모든 황오리가 정확히 인식한다는 점이다. 천적에 놀라 한꺼번에 날아오르지 않는 한 거의 대부분 선발대, 후발대로 나뉘어 여러 작은 무리가 순차로 이동하는데 그 방향과 지점이 정확히 일치한다.

먹이터에서 휴식터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무리를 이루지 않고 2~3개 혹은 그 이상의 무리로 나눠 이동한다. 위험을 분산하려는 생존본능인 듯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황오리들은 주변의 먹이터를 완전히 꿰뚫고 있다. 그들은 10월 중순께 날아와 이듬해 3월(일부는 4월까지도 남아 있음)까지 머무는데 마치 잘 짜인 계획표에 의해 먹이터를 찾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먹이터의 방향이 항시 일정하지 않은 게 특징이다. 하루는 강 하류 쪽으로 갔다가 다음날에는 상류 쪽으로 이동하는 등 예측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혼란이 없다. 여기서 또 하나 의문점이 있는 게 이러한 결정을 무리 중 어떤 개체가 할까란 점이다. 이동할 때 가장 먼저 날아오르는 무리(선발대)의 이동 방향을 후발대가 뒤따르는 것으로 보아 그 결정은 선발대의 우두머리가 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이에 대해 알려진 게 없다.

 

미호강 찾는 이유는 '안전과 먹이' 때문

황오리의 국내 최대 월동지인 미호강·무심천 합수부의 모래사장(휴식터)과 인근의 미호평야(먹이터) 위치도.
황오리의 국내 최대 월동지인 미호강·무심천 합수부의 모래사장(휴식터)과 인근의 미호평야(먹이터) 위치도.

황오리들이 미호강을 찾는 이유는 월동지의 최대 조건인 '안전과 먹이' 때문이다. 안전한 휴식터와 먹이자원이 풍부한 먹이터가 있기에 그들은 해마다 이곳을 찾아 겨울을 난다.

미호강은 넓은 모래사장으로 유명하다. 곳곳에 넓은 모래벌판이 펼쳐져 있고 그 옆으로는 강물이 흐른다. 황오리는 유독 이런 환경을 좋아한다. 천적으로부터 무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모래사장만 있어서도 안 되고 모래사장 옆으로 강물이 흐르는 곳을 더욱 선호한다. 강물이 해자(垓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도랑) 역할을 한다는 것을 그들도 아는 듯하다.

미호강은 또 주변에 미호평야를 펼쳐 놓아 천혜의 먹이터를 제공한다. 황오리는 겨울철 먹이터로 농경지 중 특히 논을 선호하는데 미호평야가 그런 필요조건을 충족해 준다.

그들은 무엇을 먹을까. 논바닥에 떨어져 있는 벼 낟알을 먹지만 그보다 오히려 초본류의 잎과 뿌리를 더 좋아하는 듯하며 마른풀도 잘 먹는다.

미호평야의 농경지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황오리들. 원안은 풀뿌리를 먹는 황오리의 모습. /김성식
미호평야의 농경지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황오리들. 원안은 풀뿌리를 먹는 황오리의 모습. /김성식

먹이는 먹이터에서만 먹는 게 아니다. 휴식터 주변에서도 틈만 나면 먹이활동을 한다. 물가 휴식터에서는 물속의 조류(藻類) 등 유기물도 즐겨 먹는다. 고향으로 이동할 시기엔 조류 등을 더 많이 먹는 경향이 있다.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한 것 같다.

미호강과 무심천 합수부를 중심으로 월동하는 무리들은 멀게는 약 15km 떨어진 증평 인근 농경지까지 먹이를 먹으러 이동하기도 한다.

 

경기도는 10여년 전에 보호종 지정

황오리가 떼지어 먹이터로 이동하는 모습. 많게는 수백 마리, 적게는 수십 마리가 무리를 이뤄 먹이터와 휴식터를 오가는 모습은 이제 미호강의 대표 겨울풍경이 됐다. /김성식
황오리가 떼지어 먹이터로 이동하는 모습. 많게는 수백 마리, 적게는 수십 마리가 무리를 이뤄 먹이터와 휴식터를 오가는 모습은 이제 미호강의 대표 겨울풍경이 됐다. /김성식

황오리는 번식기엔 고향인 몽골, 중국 북부, 러시아 등지에서 지내고 겨울철엔 한국, 일본, 중국 남부 등지로 이동한다. 국제적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철새 신분이다. 황오리와 관련해 미호강이 국제적 관심 대상이 되는 것은 미호강이 황오리의 주요 월동지로서 그들의 안녕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번식지와 중간기착지에서의 안녕도 중요하지만, 1년 중 가장 거친 환경과 맞서야 하는 겨울동안의 안녕도 매우 중요하다.

언제부턴가 미호강 하면 많은 이가 황오리를 떠올린다. 그만큼 미호강을 대표하는 생물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해당 지자체인 청주시와 충북도 등은 보호 노력을 적극 기울이지 않는다. 10여년 전에 이미 보호종으로 지정한 경기도와는 딴판이다.

오히려 청주시는 젯밥에만 관심 갖는다는 비난을 받는다. 지역민들은 청주시가 황오리 같은 철새 보호에는 별로 관심 없고 그들을 이용하려고만 한다고 꼬집는다. 최근 시작한 정북동 생태역사공원 조성사업을 지적하는 것이다.

청주시는 미호강과 무심천의 합수부 인근에 친수공간 조성을 통한 시민들의 여가·문화공간 제공을 목적으로 해당 사업을 추진 중이다. 시는 안내판을 통해 '자연과 시민이 함께하는 친환경적인 생태하천 환경 조성 및 현지 여건과 주민의견을 반영한 효율적인 생태역사공원 조성을 하려 한다'고 알리고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사업부지 인근은 황오리의 국내 최대 월동지다. 뿐만 아니라 흰꼬리수리, 독수리, 노랑부리저어새, 재두루미 같은 보호조류들이 찾는 생태곳간이다. 이에 대한 홍보와 함께 각 생물종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먼저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황오리는 사람의 접근에 매우 민감하다. 사람을 천적 취급한다. 그런데 월동지 주변에 사람의 접근을 공식적으로 부추기는 관찰시설 등을 설치한다면 황오리들이 좋아할 리 만무다. 오히려 경계심만 부추길 뿐이다.조류전문가 조해진 박사(한국환경생태연구소)는 "황오리 같은 예민한 새가 머무는 월동지 인근에 관찰데크 등을 설치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안정적인 생활에 불편을 주고 경계심을 부추기게 된다"며 "부득이 사업을 추진하려면 관찰자들이 새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해 추진할 것"을 당부했다.

황오리의 미래 안녕과 관련해 먹이터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축사, 비닐하우스 등의 시설물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철새들의 먹이터인 농경지가 계속 줄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철새들을 위해 도래지 주변의 전봇대와 농사용 시설을 제거하는 다른 지자체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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