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정예 멀티플레이어 전략으로 디지털시대 대응해야"

편집자

중부매일은 1990년 1월 20일 '중부권 시대의 재창조'를 사시(社是)로 많은 사람들의 설렘과 기대 속에 힘찬 첫 발을 내디뎠다. 그 후로 33년 동안 정론직필의 자세로 참다운 지역신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의지와 열정으로 최선을 다해왔다. 중부매일 창간 멤버로서 매일 저녁 10시 30분이 넘어 신문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다 뒤늦게 '석양주'를 마시며 또 다른 내일을 기다렸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편집국장을 거쳐 논설주간으로 퇴직한 조승희 주간, 중부매일의 경영기획과 문화사업을 맡아했던 장충기 국장, 경제, 사회부를 거쳐 정치통으로 활약하고 중부매일 독자권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김영철 부국장이 함께 33주년을 맞은 중부매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짚어봤다.

 

 

▷이지효= 선배님들 정말 오래간만이다. 중부매일을 떠난지 최소 10년 이상이 된 것 같은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이 궁금하다.

 

조승희 전 논설주간 
조승희 전 논설주간 


▷조승희= 2007년 퇴직 후로도 '열심히 살자'를 신조로 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다.

▷장충기= 2013년 3월 퇴직 후 인생 2막을 자영업으로 현업에서 일하고 있다.

▷김영철= 1989년 입사해 2010년까지 20년 3개월 근무 후 공기업에서 9년, 지금은 벤처기업을 설립해 운영중이다. 

▷이= 창간 당시 기억을 묻고 싶다. 기쁜일, 슬픈일, 애로사항 등이 있었을텐데.

▷조= 1989년 창간 당시 언론 환경이 급물살을 탔을 시기다. 당시 김기창 화백을 비롯해 한국도자기 김은수, 김성수 회장 등은 물론이고 법조계, 학계, 문화예술계 인사 등 각 분야 오피니언 리더들의 동참과 지원속에 독자들의 축복을 받으며 출발했다. 이곳 신봉동 새 사옥을 신축해 이전할 때 내집을 마련했다는 자긍심도 컸다. 

 

장충기 전 사업국장
장충기 전 사업국장

▷장= 제5공화국 이후 1도 1사 체제에서 언론 자유화로 태동한 중부매일은 기존의 활자 시스템에서 최첨단 CTS와 칼라인쇄 제작의 최첨단 기술로 타 지방지와의 차별화로 직원들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대조편집기가 들어오면서 인쇄에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았다. 지방지 중에서는 전국 최초여서 당시 새로 출범하는 지역신문 대전, 강원에서 벤치마킹 올 정도로 최첨단이었다. 당시 정직원만 120명 정도였으니 규모도 대단했다. 

▷김= 창간 초기에는 초판이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나왔는데 직원들 모두 초판 신문이 나올 때까지 회사에서 기다렸다가 신문을 확인하면 그때서야 뒤늦은 저녁을 먹으러 갔었다. 해가 넘어가는 밤에 마신다 해서 '석양주'라 명명해 술 한잔 기울이며 오늘 있었던 일과 내일 일어날 일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동 틀때까지 함께하고 같이 출근한 것이 생생하다.

▷조=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당시 문공부에서 기자증(프레스카드)을 발급했다. 기자증 발급이 안되면 기관 출입이 안됐었다. 창간 당시에는 어디를 가도 인정 받았었지만 지역신문이 난립하면서 언론 환경이 어려워졌다. 이후 1997년 IMF로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본의 아니게 선후배, 동료들의 퇴사가 가슴 아픈 일이다.

▷장= 창간 당시 대전, 충남까지 확장했었으나 경기 악화로 충남지역 철수로 인한 구독자 감소와 사세확장이 대폭 축소 돼 위상이 추락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때 함께하던 동료 직원들이 직장을 떠날 때가 슬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김= 저 역시 구조조정 당시가 가장 슬픈 기억이다. 

▷이=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조= 충주호 화재 당시 신문을 직접 싣고 현장으로 배달하며 취재팀과 함께 취재한 기억, 창간 10주년 때 청와대로 가서 김대중 대통령을 인터뷰 했던 기억, 도지사기차지 시·군대항 마라톤대회, 충북치안대상 등의 사업도 기억이 난다. 또 직원들의 후생복지와 견문을 넓히기 위한 인도네시아 연수도 추진했었다.

▷장= 무에서 유를 성사시켰을 때였던 것 같다. 2002년 10월 중국흑룡강성예술단을 초청해 충북 12개 시·군을 순회하며 공연했던 것이다. 지방일간지 최초로 외국 예술단을 단독으로 초청해 15일 동안 13회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였던 것 같다. 현재 충북치안대상을 운영하며 잘 끌어오고 있는데 충북소방대상도 기획해 소방대원들을 격려한다면 좋을 것 같아 제안하고 싶다. 또 운보 전국 미술대회, 로봇경진대회 등을 추진했었는데 운보 전국 미술대회가 없어진 것이 너무 아쉽다.

김영철 전 정치부장 
김영철 전 정치부장 

▷김= 봉명초등학교에서 열었던 전직원 체육대회, 진천 초평, 충주 수안보파크호텔, 대천 등에서 전직원 워크숍과 세미나를 연 것이 기억에 남는다. 2008년 서해 기름유출 사건이 있던 때도 전 직원이 한 마음으로 태안에 봉사활동을 갔던 기억, 인도네시아 직원 연수 등 직원들의 단합 기회를 가졌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변화하는 언론시장에 대한 생각은?

▷김= 중부매일은 2006년부터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우선지원대상사에 16년째 선정돼왔다. 그로 인해 전산 장비, 기획취재, 지역민참여보도 등을 지원받았다. 질적 측면에서 타 언론사보다 차별화 됐고, 뉴미디어추진본부를 설립해 2010년 충청권 최초 모바일 뉴스전송 서비스를 개시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전국 일간지 평가지표에서 총점 90점으로 충청권 신문사 중 최고점을 받았다. 열독률 조사에서도 충청권 1위를 차지했다. 그 이유가 2017년 창간을 기점으로 신문 판형을 대판에서 베를리너판으로 바꾼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조= 퇴직 후 16년만에 회사에 들어오면서 "많이 발전했구나, 혁신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감사한 마음이다. 김영철 국장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결실을 맺은 것 같다.

▷장= 영상미디어 대중화로 인쇄매체가 사라질 것이라 했지만 여전히 종이책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다양한 이유로 뉴스는 소비되고 신문 구독자도 늘고 있다. 매체수가 많아 구독하는 수가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종이신문이 완전히 없어지는 현상은 아니라고 본다. 신문을 많이 보는 사람치고 지식이 없는 사람이 없다. 

▷이= 창간 33주년을 맞아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조= 언론은 공익과 정의 편에 서서 진실과 사실을 보도하는 책임과 역할이 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정도를 걸어가면 활자매체는 영원히 존속할 것이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기자의 자존심을 갖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결실을 맺는다.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의 두 바퀴로 유지되는데 이를 견인하는 든든한 축은 언론 뿐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는데 그 마음으로 간다면 100년 신문으로 거듭날 것이다. 언론의 사명은 기본이지만 임직원 모두가 건강해야 한다. 또 직장도 중요하지만 가정에 충실한 후배들이 됐으면 한다. 지금 소수정예로 힘들더라도 이것을 이겨내는 후배가 되면 좋겠다.

▷장= 감회가 새롭다. 33년의 장년의 나이로 가장 왕성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다져놓은 터전에서 각자가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어렵겠지만 1인 2~3역을 하는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 자신감을 가지고 노력하는 자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후배님들의 선전을 기원한다.

▷김= 디지털 시대에 지역사회와 함께 소통하는 커뮤니티의 플랫폼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소셜미디어 환경이 변화되는데 뉴스 앱, SNS 에 기사 제공 및 공유 부분이 약하다. 지속적으로 많은 독자들이 소셜미디어의 장에서 우리 기사를 같이 읽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중부매일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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