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산골 폐교, 시끌벅적한 문화예술 거점으로
연극 매개로 2004년부터 매년 산골공연예술잔치 열어

충북 영동에 위치한 '자계예술촌(영동군 용화면 횡지구백길5·대표 박연숙)'은 매년 '산골공연예술잔치'를 열어 사람들에게는 이미 알려진 유명한 곳이다.

지난 2001년 박창호 예술감독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연극'이라는 공연을 매개로 23년 동안을 가꾸고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곳은 영동읍에서 들어가려면 450m 높이의 도덕재를 굽이굽이 넘어가야 한다. 오히려 전북 무주군과 경계에 위치해 무주 IC로 나가서 가는 것이 훨씬 빠르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폭' 안기듯 자리잡고 있는 자계예술촌은 옛 영동 용화초등학교 자계분교를 활용한 곳이다.

주황색으로 익어하는 감들이 주렁주렁 달린 큰 감나무 두 그루가 보호수처럼 서있고, 운동장을 파서 만든 공연장이 눈에 띄었다.
 

자계예술촌 내 100석 규모의 소규모 실내공연장
자계예술촌 내 100석 규모의 소규모 실내공연장

이 야외 공연장은 400명에서 최대 5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본관 안에는 100석 규모의 소극장과 사무실, 분장실이 있다.

자계예술촌으로 사용되고 있는 용화초 자계분교는 1949년 9월 1일 용화국민학교 자계분교로 인가가 난후 1957년 9월 자계국민학교로 설립됐다.

이듬해인 1958년 7월 신축교사로 이전했다가 30년이 지난 1988년 8월 말 용화국민학교 자계분교장으로 격하됐다가 1991년 3월 용화초등학교로 통폐합되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됐다.

그렇게 10년동안 방치 상태였던 이곳에 지난 2001년 박창호 예술감독과 몇명의 단원들이 자계마을로 이주했다. 박창호 감독은 충남대학교 82학번으로 그동안 대전을 베이스로 극단 '터'에서 활동해 왔었다. 단원들과 마음놓고 연습할 공간을 찾다 영동까지 오게 됐다.

본관 건물에는 교실 2개를 합쳐 100석 규모의 실내 소극장을 만들었다. 학교 입구쪽 별관은 식당과 배우들의 숙소, 연습실로 꾸몄다.

이들은 매달 공연을 하기로 했고 후미진 산골 폐교를 활용한 예술촌을 알리는 방법은 일일이 입소문을 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해 가까운 영동은 물론 무주, 심지어 대전까지 포스터를 붙이며 홍보에 나섰다.

그렇게 처음에는 미약했지만 날이 갈수록 자계예술촌의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영동, 무주, 대전은 물론 더 멀리서 찾아오는 관객도 있었다. 지금까지 20회 축제를 하는 동안 15회를 참여한 관객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동안 꾸준히 찾아와 준 사람들의 발길이 이 축제를 20년간 이어오게 한 원동력이었다.

박연숙 대표는 "학교라는 곳이 그 지역에서 터가 좋고 주민들이 기증한 땅도 많고, 마을 행사나 잔치가 열리는 중요한 장소"라며 "이 학교 출신들에게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장소가 된다"며 학교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

"저희가 이곳을 예술촌으로 만들고 나서 이곳 출신 사람들이 자주 찾아와요. 1학년 다니다가 폐교가 됐다는 어떤분은 이제는 자신의 아이와 함께 예술촌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이 공간이 담고 있는 시간과 역사를 통해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참 감회가 새로워요."

그만큼 학교가 중요한 공공재인 만큼 공공성이 강조되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오던 이들에게도 코로나19는 많은 변화를 가져다줬다.

물론 외적인 요인과 내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박창호 예술감독도 올해 환갑을 맞으며 박연숙 대표도 40대 후반의 나이가 됐다.

"처음에는 젊은 패기로 발로 뛰어다니며 이것저것 했었는데 물리적으로 너무 더운 여름에 진행되는 점도 있고 업무도 너무 많아지다보니 다시 숨고르기를 하면서 21회 산골공연 예술잔치는 소박하게 준비해 보고 싶어요."

박 대표는 적은 예산이지만 가장 신경쓰는 행사라는 산골공연 예술잔치를 이제는 젊은 MZ세대들도 이곳을 찾아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로 수정해 보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자계예술촌에서 열린 제20회 산골공연예술잔치
자계예술촌에서 열린 제20회 산골공연예술잔치

그동안 더운 여름인 7~8월에 진행됐던 페스티벌을 날씨 좋은 봄으로 옮겨볼 계획도 있다.

박 대표는 "산골공연 예술잔치는 무료가 아니다"라며 "공연 관람료가 정해져 있지 않고 공연을 보신 관객들이 느낀만큼, 감동만큼 스스로 책정한 금액으로 자유롭게 관람료를 지불하는 '감동 후불제'"라고 설명했다.

2004년 제1회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시골마을에서 보기 힘든 공연과 콘서트를 준비해 예술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자계예술촌.

올해는 박창호 예술감독과 함께했던 충남대 탈춤연구회 82학번 동기 '셀프 환갑잔치 탈춤판'과 탁영호 특별전시 '오래된 지금'까지 추가해 더 많은 볼거리를 선사했다.

자계예술촌에서 열린 제20회 산골공연예술잔치
자계예술촌에서 열린 제20회 산골공연예술잔치

특히 이곳은 문화예술이 소외된 남부권의 거점공간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오는 21일 오후 2시부터 자계예술촌에서 충북문화재단의 문화예술교육거점지원사업 '사잇;점의 달'을 운영한다.

보은, 옥천 등 남부권 문화예술교육으로 보듬는 지역공동체 '문화예술교육 장섰네'를 진행할 예정이다.

보은, 옥천 등 남부권역 문화예술교육현장의 교류와 체험 장터가 열릴 예정이다.

박 대표는 "오는 21일 열리는 행사에 많이 참여해 달라"며 초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인터뷰] 박연숙 자계예술촌 대표

이 곳 활용한 상시 프로그램 늘릴 것

박연숙 자계예술촌 대표
박연숙 자계예술촌 대표

"폐교를 활용해 사용한다는 것이 큰 장점도 있지만 힘든 점도 많아요. 하지만 이만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큰 장점이에요."

박연숙 자계예술촌 대표는 폐교 활용에 대해 긍정적이지만 앞으로 폐교를 활용해서 무언가를 할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렇게 정비되고 가꿔온 모습만 보기 때문에 과거의 시간은 보지 못하고 현재만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렇게 가꾸기까지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새로운 누군가가 폐교를 활용해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한다면 지금 모습이 시작이 아니다라는 것을 꼭 말해주고 싶어요. (웃음)"

박 대표는 "폐교를 활용해 사용한다는 것은 그 마을 주민과의 관계도 정말 중요하다"며 "그동안은 마을 주민들과 많이 함께하지 못했는데 지난해부터 마을 풍물패를 복원하자는 의미에서 픙물놀이와 공동체놀이를 통한 마당극 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반응이 정말 좋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오히려 외부에서는 많은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것이 의외로 더 어려운 일이었다"며 "마을 어르신들이 그냥 계시는 분들이 아니라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고 바쁜 어르신들이 많아서 그랬던 것도 같지만 현재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감동적"이라고 밝혔다.

박 대표는 "앞으로는 이곳을 활용한, 안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며 "아기자기한 것들로 작지만 소박하게 상시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 볼 생각이며 오는 21일 행사를 기점으로 이곳이 남부권 문화예술교육의 거점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글·사진/ 이지효·윤소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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