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쇼군'.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일본수상의 별명이다. 일본 '정경유착'과 '금권정치'하면 떠오르는 '록히드 사건'의 주역, 다나카에 대한 짙은 향수가 일본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 도지사가 다나카의 일대기를 1인칭으로 쓴 소설 '천재'는 70만부, 다나카의 '명언'을 모은 어록집은 67만부를 각각 돌파했다.

다나카는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2015년 NHK가 종전 70주년을 맞아 실시한 '전후(패전이후)를 상징하는 인물' 설문조사에서 다나카는 25%의 '지지'를 얻어 일왕(8%)까지 따돌리며 1위에 올랐다.

그는 젊은 시절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했고 '고등소학교' 졸업 학력으로 총리까지 오른 대표적인 '흙수저' 정치인이지만 도쿄대 출신 엘리트관료들을 쥐락펴락했던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유명했다.

그가 새해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유력한 차기대선 주자들이 그의 대표적인 치적인 '일본열도 개조론'을 연상시키는 '국가개조론'의 의지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새해 사자성어로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뜻의 '재조산하'(再造山河)'를 뽑았다. 명칭만 다를뿐 국가개조론을 담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함락 소식에 실의에 빠져 있던 서애 류성용에게 적어준 글귀로 문 전 대표 측은 "지금 우리가 절박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대개조에 나서야 할 때임을 뜻 한다"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국민 '대통합'을 강조했지만 국가개조도 피력했다. 그는 국민에게 보낸 신년사에서 "그간 쌓인 제도적 결함과 잘못된 관행으로 누적된 폐단 때문에 한국을 선진국으로 끌고 가기에는 한계에 부딪혔다"며 "이제 겸허하게 문제를 직시하고 일체의 부조리, 불공정한 구습을 혁파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권에 국가개조론이 등장한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3년 전 세월호참사 직후에도 '국가개조론이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개조'롤 통해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바꾸겠다"고 선언하고 해양경찰청 해체와 국민안전처 신설 그리고 민관유착을 근절하고 공직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이후 대한민국은 국가개조는 커녕 국가혼란과 국정마비로 대통령이 초유의 탄핵사태를 겪고 있다. 지도자의 무능과 부패 때문이다. 그래도 새해에 또 등장한 것이 국가개조다. 과연 차기정부에선 가능할까.

다나카의 '일본열도 개조론'의 핵심은 도시에 집중된 예산을 지방으로 분산하고 도로·철도 SOC 개발로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고 민생을 살린다는 것이다. 경제부흥을 위한 하드웨어적인 개조론이다. 그렇다면 문재인과 반기문등 유력 대선주자들의 '국가개조'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 국가개조론도 지도자의 '영혼'이 담겨있지 않으면 한낱 '구호'에 그치고 만다. /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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