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가슴에 묻고 사는 사람이 많아요"

1993년 1월 7일 새벽 1시 13분 청주시 우암동 우암상가아파트가 무너져 내렸다. 지하 1층 지상5층 규모의 상가아파트가 원인 모를 화재로 가스가 폭발하면서 붕괴된 가운데 붕괴사고 현장을 찾은 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이 사고로 고귀한 생명 28명이 사망했다. / 김용수

[중부매일 김정미 기자]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에 나와 보니 바로 코앞에서 건물이 무너져 내렸더라고. 사람들이 죽어서 나오는데 그걸 그냥 지켜만 본 거지. LPG가스통이 추가로 터지면 상가 앞 가게들도 위험하다고 피신하라고 했는데 다행히 또 터지진 않았어요."

청주시 우암동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양춘자(61)씨는 지난 1993년 1월 7일 새벽에 일어난 사건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28명의 사망자와 48명의 부상자를 내고 370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참사, 바로 우암상가 붕괴 사건. 1층에서 화재가 난 이후 10여 개의 LPG 가스통이 잇따라 폭발하면서 지하 1층, 지상 4층 상가건물은 세운 지 12년 만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지난 1993년 1월 7일 새벽 붕괴사고가 일어난 옛 청주 우암상가아파트(현 평화상가아파트) 앞에서 30년째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양춘자씨가 24년 전의 참혹했던 사고 현장을 떠올리며 안타까웠던 사연들을 전하고 있다. /김용수

양춘자씨의 아들 친구도 이 사고로 가족을 잃었다. "혼자 독서실을 간 사이에 사고가 터졌어요. 부모도 잃고 형제도 잃고 혼자 살아남았지.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사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양씨는 주변 상인들이 모두 떠나고 없는 현장에서 여전히 30년째 홀로 세탁소를 지키고 있다.

김향미(50)씨의 가족은 모두 살아남았지만 당시 받은 충격과 상처는 몸 속 질병으로 자리 잡았다.

"첫째가 두 살, 둘째는 임신 8개월이었어요. 'ㅁ'자형 건물 한쪽이 무너진 상태에서 옥상으로 대피했죠. 문틈 사이로 연기가 들어오는데 타죽기도 전에 질식해 죽겠더라고요."

김씨는 이 사고의 충격으로 8개월 만에 둘째를 조산했다. 둘째는 최근 대학을 졸업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운 좋게 살았지만 다른 유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악몽 같은 시간을 견디고 있다.

"내 물건 하나 없이 구호물품으로 다시 시작했어요. 감사한 일이 많지만 제가 몸조리도 못하고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뇌종양을 앓게 됐습니다. 수술 후 최근엔 담낭염까지 생겼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김씨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솔직하고 선한 삶을 충실하게 살면 이런 일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암상가 붕괴 사고 2년만인 1995년 6월, 사고가 났던 바로 그 자리에 평화상가아파트가 지어졌다.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은 이곳을 벗어났지만 두 세 가정은 고통을 딛고 평화아파트에 입주했다.

1993년 1월 7일 새벽 1시 13분 청주시 우암동 우암상가아파트가 무너져 내렸다. 지하 1층 지상5층 규모의 상가아파트가 원인 모를 화재로 가스가 폭발하면서 붕괴된 가운데 붕괴된 사고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펼치고 있다. 이사고로 고귀한 생명 28명이 사망했다. /김용수
1993년 1월 7일 새벽 1시 13분 청주시 우암동 우암상가아파트가 무너져 내렸다. 지하 1층 지상5층 규모의 상가아파트가 원인 모를 화재로 가스가 폭발하면서 붕괴된 가운데 사고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사체를 수습하고 있다. 이사고로 고귀한 생명 28명이 사망했다. /김용수

우암상가 붕괴의 직접적 원인은 무리한 설계와 부실시공.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허가가 났지만 자금 사정으로 건축업자가 자주 변경됐고, 설계 변경으로 4층과 옥탑을 증축하면서 건물 하중에 문제가 생겼다. 이 사고로 안전 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강조됐으나 이후 성수대교 붕괴(1994년), 충주호 유람선 화재(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 사건이 잇따랐다.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재난은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줬다.

옛 청주우암상가아파트 추모 표지석 / 김용수

충북대 행정학과 이재은 교수는 "안전 불감증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우암상가 붕괴와 같은 인적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충고했다.

이 교수는 "중앙정부에서 재난관리,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제2의 우암상가 붕괴, 제2의 삼풍백화점 붕괴, 제2의 세월호 침몰 사건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재난에 대비한 전문화된 인력개발,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청주우암상가아파트 붕괴 사고-사체 수습하는 소방관들 / 김용수
청주우암상가아파트 붕괴 사고-사체 수습하는 소방관들 / 김용수
청주우암상가아파트 붕괴 사고-사체 수습하는 소방관들 / 김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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