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누가 가난한 자인가②



마태복음(6:24-34)은 말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하지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니라."

위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것은(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인류에 대한 사랑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재물을 귀히 여겨 사욕에 빠지면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서 다투게 될 것이니, 사랑을 저버리는 것이다. 부(富)가 의(義)를 해친다고 본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이 생업에 종사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반대로 인류에 대한 사랑을 섬긴다면 재물을 위해 사람들과 다툴 수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사랑과 재물은 동시에 추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라고 하면서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