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미영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자료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한 달 동안 살아 보는 여행'이라는 의미의 이른바 '한 달 살기'가 유행이다. 예전에는 주말 극기 훈련 같은 여행에서부터 길어야 일주일 이내의 짧은 여행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세계 10대 해변에서도 바닷물에 잠시 발만 담그고, 사진 몇 장만 찍고 급히 돌아가는 식의 단기여행을 즐겨오다, 최근부터 '한 달 살기'와 같은 장기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평소 여행을 좋아해서 종종 다니는 편이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지를 의논하고, 숙소를 결정하고, 교통편 등을 알아보면서 여행 준비의 기쁨을 느끼기 시작해서, 여행의 출발점인 공항·기차역 등에서 가족들과 '여행지에 가서 무엇부터 할지' 등 대화를 나누면서 비행기·기차의 탑승을 기다릴 때 여행 중 최고의 기쁨을 느껴왔다. 평소 책임이 따르고, 매 순간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하는 소송업무를 하다 보니 잠시도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때때로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여행지에서는 '낯선 사람들, 낯선 풍경'등이 주는 낯설음에서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아이와 온전히 보내는 시간과 여행지의 여유로움에서 그동안의 힘겨웠던 노동을 보상받아왔다.

필자는 최근 하와이 '세 달 살기'의 기회를 얻었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는 필자를 배려한 기회였다. 그런데 숙소·교통편을 알아보면서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세 달간 외국에서 머물러야 하는 상황은 여행의 설레임이 아니라 부담감을 주었다. 3박 5일 정도의 일정은 굳이 패키지가 아니더라도 몇 번의 인터넷 검색으로 쉽사리 일정을 짤 수 있지만 세 달 살기는 일정을 짜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여행 출발 전의 설레임 따위는 느끼지 못했다.

하와이에 도착해서도 평소 여행과는 확연히 다른 기분을 느끼게 했다. 평소엔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여행지에서 기쁨을 위해 큰 고민 없이 소비를 할 수 있었다. 미국인이 어눌한 영어실력을 가진 필자를 상대로 살짝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리숙한 척 속아줄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물가 비싼 하와이에서 소득 범위 내의 소비를 하기 위해서 주로 현지인들이 이용한다는 마켓을 이용하고, 여행지에서 당연한 듯 즐겼던 외식도 예산을 고려해서 극도로 자제 했다. 양파를 하나 사면서도 가격표를 일일이 들여다보고, 영수증 잃어버린 8불짜리 물건 환불받겠다며 점원에게 사정을 하면서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살고 있나'라는 후회를 하면서 지내다보니, 하와이가 가지고 있는 자연환경에 마냥 감탄할 여유가 없었다.

세 달 살기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하와이의 자연환경'은 물론 세 달간 고생스럽게 현지인들과 부딪치며 지내온 기억들조차 아름다운 추억들로 변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고열에 시달리며 울먹이는 아이를 안고 몇 시간씩 베란다를 서성거렸던 끔찍한 기억도, '얼른 낫고, 엄마랑 저기 바다에 가서 놀자'라고 아이에게 말하면서 내려다 봤던 베란다 밖의 바다도 온전히 추억으로 남았다. 세 달 살기를 마친뒤 '그 때가 그립다'라는 말을 반복하다, 문득 우리의 삶도 살아보기 여행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생 끝자락 즈음 되는 나이가 되면 가족과 함께 했던 평범했던 일상들이 살아보기 여행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영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결국 우리는 살아보기 여행처럼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힘겨운 직장생활도, 육아에 지쳐 괴로운 일상도 지나고 보면 추억일텐데 기왕이면 좀 더 긍정적인 마음으로 지금 이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새해에는 때로는 알면서도 남에게 속아넘어가 줄 수 있는 아량, 돌발적인 상황을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가끔은 계획에도 없던 소소한 외식을 가족과 함께 하면서 설레임 가득한 여행자처럼 추억 가득한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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